"형님, 밥 한끼 합시다" 경찰 못지 않은 택시기사들의 눈썰미

시흥에서 택시를 몰던 기사 A씨가 현금수거책을 승객으로 태웠을 당시 차량 내부의 모습.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형님, 오랜만에 밥 한끼 합시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 한마디엔 택시기사의 기지가 담겨 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최근 수사망을 피하려 계좌 이체 대신 ‘대면 편취’ 수법을 택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 못지 않은 눈썰미를 지닌 택시기사들의 활약이 범인을 검거하는 데 공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올해 2월21일 시흥에서 택시를 몰던 기사 A씨(57)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보이스피싱 사건을 수사 중인 여주경찰서 소속 수사관이었다. 경찰은 A씨에게 ‘지난 1월26일 시흥에서 여주까지 태운 승객이 현금수거책이었다’고 일러줬다.

다음날 손님을 태운 A씨는 뒷좌석에 앉은 이가 바로 그 현금수거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연찮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어폰을 착용한 뒤 조심스레 ‘112’를 눌렀고, 이어 “형님, ○○로 가는 중인데 식사나 하시죠”라고 통화를 시작했다.

경기남부경찰청 112상황요원도 A씨의 말에 침착하게 대응했고, 그가 ‘예’ 또는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게끔 질문을 이어 갔다. 경찰은 A씨의 이동경로를 파악해 남안산 나들목에 고속도로순찰대를 대기시켰고, 1천만원을 쥔 수거책은 그대로 붙잡혔다.

김순호 수원남부경찰서장(우측)이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검거에 공을 세운 택시기사 B씨에게 표창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수원남부경찰서 제공

같은 날 인천에서 택시기사 B씨(57)의 차량에 올라탄 승객 역시 현금수거책이었다. B씨는 ‘인천에서 돈을 수금하러 간다’, ‘돈을 받으려면 30~40분 정도 걸린다’는 등 손님의 말에서 수상쩍은 낌새를 느꼈고,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신고를 접수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수원남부경찰서는 현금수거책의 인상착의에 대한 B씨의 증언을 토대로, 범인의 뒤를 쫓아 검거에 성공했다. 경찰에 붙잡힌 50대 남성은 여섯 차례에 걸쳐 9천만원 상당의 현금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들 택시기사를 ‘피싱 지킴이’로 선정하고, 7일 표창장을 수여했다. 수원남부서에서 표창을 받은 B씨는 “이동하는 내내 휴대전화만 바라보는 등 수상한 점이 보여 신고하게 됐다”며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범인이 잡혔다는 경찰의 연락에 정말 뿌듯했다. 다음에도 같은 상황이 오면 잘 대처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희준·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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