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네가 있어 행복하다" 엄마에서 '할마'가 된 어버이

“손주 사랑愛 은퇴 없죠”… 끝없는 어버이은혜
맞벌이 가구 늘자 엄마 대신 할머니 '황혼 육아'
"힘들어도 웃는 날 많아…손주들 재롱에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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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용인시 처인구에 사는 '할마' 박연옥 할머니(왼쪽에서 2번째)와 윤복열 증조할머니가 손주들을 돌보고 있다. 조주현기자

경기도에서 배우자가 있는 가정 중 맞벌이에 나선 가구의 비중은 절반에 달한다. 일로 바쁜 자녀들을 위해 엄마의 역할을 맡는 할머니를 ‘할마’, 아빠를 대신하는 할아버지를 ‘할빠’라고 부르곤 한다. 은퇴를 하면 제2의 삶이 시작된다는 요즘에도 손주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할마’들의 내리사랑을 만나봤다.

어버이날을 사흘 앞둔 5일 용인시 처인구의 한 주택.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까르르’ 숨이 넘어갈 듯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마중을 나왔다. 꾸밈없는 미소로 집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준상군(5)과 아진양(3)의 너머로 푸근한 인상의 두 할머니가 나타났다. ‘할마’의 삶을 살고 있는 박연옥 할머니(60)와 윤복열 증조할머니(84)였다.

박 할머니는 첫째 준상군이 태어난 지난 2018년부터 다시 ‘육아 전선’에 뛰어들었다. 자영업으로 퇴근시간이 불규칙한 딸 부부를 대신해서 아이를 돌보기로 한 것. 그 덕에 인생의 절반을 함께해온 ‘시어머니’ 윤 증조할머니까지 3대에 걸친 육아를 시작하게 됐다. 두 할머니가 준상군의 육아에 이골이 날 때쯤 아진양까지 품에 안겼다.

지병이 있다는 박 할머니는 아픈 허리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활동량을 따라가기엔 힘이 부친다고 했다. 준상군이 말을 시작하니 때때로 ‘할머니, 미워’라는 말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핏줄이 사랑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단다. 며칠 전 박 할머니의 생일날, 아이들은 ‘할머니를 위해 준비했다’며 사랑이 듬뿍 담긴 하트를 그려오기도 했다.

박 할머니는 “젊었을 때 장사로 자식들을 많이 챙겨주지 못해 지금도 가슴이 많이 아프다”며 “그래도 손주들은 우리 딸보다 정서적으로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돌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체력이 부족해 가끔 지치기도 하지만, 사랑스러운 손주들이 있어 노인뿐인 이 집안에 미소와 활력이 넘치는 것 같다”며 활짝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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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 공도읍의 김향숙 할머니(오른쪽)가 손녀 솔리양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이명호기자

안성시 공도읍의 ‘젊은 할마’ 김향숙 할머니(59)는 손녀 솔리양(6)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손녀의 손을 맞잡고 진도와 태안, 부안, 포항 등을 누벼온 김 할머니는 “얼마 전에 손녀와 세종대왕릉에 다녀왔는데 벌써 세종대왕이 누군지 배워서 알고 있더라”라며 손녀 자랑도 잊지 않았다. 최근에는 솔리양이 독도에 대해 배워 독도 여행을 계획 중이란다.

내내 밝게 웃던 김 할머니에게도 고비는 있었다. 이따금 양육 방식을 놓고 딸과의 가치관 차이로 부딪히는 것이다. 그는 “우리 때는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내 새끼 잘 키워보겠다’는 마음으로 육아를 했지만, 요즘은 혼내는 방식도 회초리가 아닌 대화더라”라며 “손녀와 함께 성장한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다시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솔리양은 어린이집에서 그림을 그릴 때면 항상 할머니를 크게 그려온단다. ‘솔리에게 할머니의 비중이 참 큰 것 같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에 코끝이 찡하도록 뿌듯하다는 김 할머니. 그의 품에 꼬옥 안겨있던 솔리양은 ‘할머니가 얼마나 좋으냐’는 물음에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계란후라이 최고!”라며 천진하게 웃어보였다.

자녀가 결혼하면 자식 농사가 끝난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네 어버이는 황혼까지도 어버이의 삶을 살고 있다.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어버이날 만큼이라도 마음 속에만 담아뒀던 ‘사랑합니다’ 한 마디를 부모님께 전해보는 건 어떨까.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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