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는 근로자가 일정 나이에 도달한 이후 임금을 줄여 고용을 유지하는 제도다. 기본적으로 정년보장 또는 정년연장과 임금 삭감을 맞교환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임금피크제라는 용어는 한국에서만 사용되지만 제도의 기본 틀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우리의 임금피크제는 금융권에서 시작했는데 2003년 신용보증기금이 도입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다. 당시는 정리해고나 조기퇴직에 대한 압박이 강했던 시기로, 고용불안 해소를 위해 정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가 대다수였다. 이후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을 통해 ‘60세 이상 정년’이 법제화되면서 제도 활용 논의가 활발해졌다. 정부는 2015년 5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제시하며 공공기관을 필두로 한 제도 도입을 강력 추진했다.
대법원이 지난 26일 나이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한 연구기관에서 일했던 연구원이 정년은 61세로 유지하면서 55세 이상 직원의 임금을 삭감하는 취업규칙이 ‘고령자고용법’ 위반이라며 깎인 임금을 요구한 소송에서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임금피크제가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나 노동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제의 합리성 판단 기준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노동자들이 입는 불이익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보상 여부 △절감된 인건비가 도입 목적에 맞게 사용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했다.
임금피크제 관련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 전반에 관해 합법성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요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 때마다 정책을 뒤집으며 허송세월한 정부 탓이 크다. 이번 판결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에서 노조의 단체협약 개정 요구가 잇따르게 될 것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노동자나 노동조합의 줄소송도 예상된다. 큰 혼란이나 갈등이 없도록 노사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고용부도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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