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 기존 영웅 흔적 지우고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중심으로 평행이론 기반 새 이야기 펼쳐
코로나 시기 극장가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영화가 지탱하고 있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2년간(16일 기준) 국내 상영작 관객수 1~10위에 MCU 영화가 4편이나 자리했다. 지난해 개봉한 <블랙 위도우>, <이터널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그리고 5월4일 공개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까지다. 오는 7월6일엔 <토르 : 러브 앤 썬더>의 개봉이 예정돼 있어 극장가가 살아난 이후로도 MCU 영화가 미치는 문화적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여년 간 우리들의 세상을 지키려고 거대한 위협에 맞서는 영웅들을 다뤄온 MCU가 달라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기존에 영웅들이 팀을 조직해서 악에 대항하는 이야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그렇다면 영웅들 대신 누가 우리들의 세상을 지켜낼 수 있는가. 영웅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지 MCU는 여러가지 대안을 실험하고 있다. 영웅이 거대 악과 대항해 세상을 구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젠 영웅 각자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무슨 일을 벌일 수 있는지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향후 MCU 프랜차이즈는 마법사 닥터 스트레인지를 중심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영웅들이 팀을 이뤘던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이후 공개된 MCU 콘텐츠들의 핵심 소재가 ‘다중우주·평행세계’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인지는 차원과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이 무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트레인지는 영웅이라고 부르기엔 어색하고 안티히어로도 빌런(악당)도 아닌 신기한 존재가 된다. 영웅에게 중요한 건 각자의 캐릭터성인데 스트레인지에겐 그런 것들이 없다. 그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능력을 갖춘 마법사니까 세상을 구할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마법사라는 이유로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다른 세상의 자신과 저쪽 세상의 나에 관해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유일한 존재가 아닐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이곳에서 내가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고 해도, 다른 세상의 내가 다른 형태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꿈꿀 수 있지는 않을까. 따라서 스트레인지는 ‘영웅들의 흔적’을 지워내고 해체하는 존재가 된다. 관객들은 스트레인지의 이야기를 통해 수많은 ‘나’라는 존재가 어디에 있든 묵묵히 각자의 삶을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영웅이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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