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사라졌는데…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민간 정착 ‘더딘 발걸음’

화성 보물 ‘수원 서북공심돈’·여주 국보 ‘고달사지 승탑’ 등 교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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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수원특례시 장안구 수원 화성 내 '보물 수원 서북공심돈' 앞 안내판에 지정번호가 게재돼 있다. 송상호기자

국가지정·등록문화재의 지정번호가 사라진 지 7개월이 지났지만, 현장에선 지정번호가 상당수 남아있어 혼란을 키우고 있다.

해묵은 문화재 서열화 논란과 일제 잔재의 청산을 목적으로 법이 개정된 만큼, 표기 개선안 정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문화재보호법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 지난해 11월19일부터 시행됐다. 기존에는 문화재 지정 순서에 따라 번호를 매겼으나, 이를 가치 순위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고, 해당 방식이 1930년대 일제에 의해 수립됐기 때문에 제도를 전면 개선한 것이다.

하지만 지자체나 민간 관할 영역에선 정착이 더디다.  지난 1일 오전에 찾은 수원특례시 수원 화성 내 보물 ‘수원 서북공심돈’과 여주시의 국보 ‘고달사지 승탑’. 두 곳의 안내문에는 지정번호가 버젓이 남아있었다. 징벌성이 있는 강제 사항이 아닌 데다, 문화재청으로부터 지침을 받지 못해 개정안이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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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수원특례시 장안구 수원 화성 내 '보물 수원 서북공심돈' 앞 안내판에 지정번호가 여전히 남아있다. 송상호기자

각종 서적에서도 번호가 발견됐다. 역사 교양서 『골○○ 역사산책: 한국사편』(3월10일 초판 1쇄) 264쪽엔 ‘국보 천마총 장니 천마도’가 국보 ‘제207호’로, 참고서인 『우○○ 초등사회 4-1』(2월 4판4쇄) 54쪽엔 보물 ‘고창 선운사 대웅전’이 보물 ‘제290호’로 지칭돼 있다. 지난 2월 해당 판을 추가로 인쇄했으나, 개정된 내용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출판사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협조 요청을 받은 바가 없었다”며 “정오표를 통해 개정된 내용이 반영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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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수원특례시 장안구 수원 화성 내 '보물 수원 서북공심돈' 성곽 내부의 안내판에 지정번호가 게재돼 있다. 송상호기자

문화재 관련 온라인 누리집의 표기 현황도 마찬가지다. 이날 국보·보물 등 고문서가 소장된 한국학중앙연구원 누리집을 확인한 결과 문화재마다 지정번호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천득염 제29대 문화재위원회 위원은 “지정번호가 문화재마다 지닌 가치의 본질을 흐리고 있어 사용하면 안 된다”면서 “정부가 대중들이 개정안의 필요성에 공감하도록 인식을 바꿔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정책총괄과 관계자는 “전 분야에 걸쳐 일괄적으로 표기를 수정하는 데에는 막대한 재원이 드는 등 번거로운 문제가 있다”면서 “공공 영역 및 지자체별 조례 등을 점검한 뒤, 순차적인 단계별 협의와 홍보를 이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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