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위원회가 있다. 농식품부 주관으로 지난해 말 출범한 민관합동의 사회적 논의기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개 식용 금지 검토’ 발언에 대한 후속 조치였다. 정부와 동물보호단체, 육견협회를 대변하는 사람들로 구성했다. 당초 지난 4월 말까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목표였지만 한 차례 연장돼 지난 4일 다시 열렸다.
이 날 회의도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났다고 한다. 앞으로는 별도의 기한을 두지 않고 개 식용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그간 위원회는 개 사육 등 관련 업계 현황조사, 개 식용 국민인식조사 등을 진행했다. 개 식용 종식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인식에는 이론이 없는 공감대도 이뤘다. 다만 개 식용 종식 시기와 종식을 위한 구체적 실행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시한에 구애 받지 않고 보다 깊이 있게 논의해 나갈 것이라는 방침만 내놓았다.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는 대만식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대만은 20여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단계별로 개 식용을 종식했다. 먼저 1998년 동물보호법을 제정해 공공장소에서의 개 도살을 금지했다. 3년 뒤에는 경제적 목적의 반려동물 도살행위를 금지했다. 2007년에는 개·고양이를 도살하지 못하게 했다. 다시 10년 뒤 동물보호법을 개정해 최종적으로 개 식용 자체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즉각적인 개 식용 금지를 촉구해 온 단체 등의 입장은 다르다. 대만은 우리와 상황이 달라 그런 식으로는 종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개 식용 시장과 관련 산업이 형성돼 있어 점진적 모델의 적용이 힘들다는 것이다. 개 식용 관련업계의 생계를 어디까지 보장하는가 등의 논의에 끌려다니지 말고 정부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 식용 금지법을 바로 만들자는 주문인 셈이다.
개 식용 식문화는 하루 이틀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만 둘 때도 됐다는 인식 또한 시대적 흐름이 돼 있다. 그렇다고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에 대해서까지 국가가 과도하게 간섭하고 나서는 것은 지나치다. 어떤 식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감옥 보내겠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1920년대 미국의 금주법은 사회적 비용만 초래했다. 안 그래도 개 식용은 머지않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여기 인천만 해도 과거 흔했던 보신탕집들이 거의 문을 닫았다. 수요 공급이 작동하는 시장의 힘이다. 대만이 앞서 간 점진적 모델은 충분히 검토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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