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왕따 국가

유래(由來)가 복잡하다. 원래는 북(Drum)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의 남인도 지방 토속어였다. 요즘은 따돌림 받는 사람을 뜻한다. 북 제조업자와 따돌림 쟁이와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좀 생뚱맞겠지만, ‘Pariah’란 단어에 대한 얘기다. 인도 남부지방의 이른바 불가촉(Untouchable) 천민이나 미얀마의 최하층민 등을 보통 ‘Pariah’라고 부른다. 인도 등지에서 반야생 상태로 분포하는 들개의 호칭도 ‘Pariah Dog’이다. 해당 단어는 부정적 뉘앙스가 짙다. 꽤 공교롭다.

▶외교무대에서 이 표현이 등장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의 회담에서다. 기자가 물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직도 왕따입니까(Is Saudi Arabia still a pariah)”. 바이든 대통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부 외신은 이를 비웃음(Smirk)이라고 썼다.

▶이런 질문이 나온 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의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가 지난 2018년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살해된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미 정보국이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 사건의 배후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2019년 당시 대선 경선 민주당 토론회에서 바이든 후보가 “그들을 국제적으로 왕따(Pariah)로 만들겠다며 압박했다.

▶이 같은 표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이 북미 하노이담판(2차 북미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인터뷰에서 북한을 ‘A Pariah State’라고 직격했다. 2019년 2월25일이었다. ‘왕따 국가’라는 뜻이다. 진행자가 “북한으로부터 더는 핵 위협은 없다”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트윗을 언급하자 “우리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왕따 국가’로 남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지적했다.

▶사실 국제무대에서 이보다 더 속된 워딩들은 다반사다. 정상과의 만남에서도 그렇다. 에둘러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격렬한 어휘들도 곧잘 사용된다. 다만 회담 등이 끝나면 언론은 “외교적인 언사였다”고 마무리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미국의 ‘A Pariah State’라는 호칭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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