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사회, 길을 묻다] 진보논객 김호기 연세대 교수

“적·아니면 동지 이분법 벗어나... 다양한 국민 욕구 포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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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 현안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있다. 윤원규기자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야가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가치관을 보장하는 책임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야 모두 소모적 비판에 매몰돼 국민 삶의질을 증진시키고 책임지는 정치적 소임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그는 권력 주체인 정부는 물론 여당과 야당 모두가 서로를 잇는 가교 역할을 감당할 때 통합과 다양성이 보장된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대한민국 정치, 적 아니면 동지라는 접근 방식 벗어나야

김 교수는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뺄셈의 정치’라고 진단했다. 이념·젠더·세대 등 사회 전 분야가 적과 동지로 나뉘는 이분법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는 평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경제·문화적 영역에 비해 정치적 발전이 더딘 상태다. 이는 5천200만 국민의 다양성을 잇는 정치적 논의가 미흡하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통합’의 가치에 ‘다양성’이 더해진 정치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인이 국민의 결정을 위임받은 대리자로서 시대 상황에 맞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전했다. 정치적 셈법으로 이분법적 대결구도가 심화된 만큼 다양한 국민 욕구를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정치인들은 국민의 결정을 위임받은 대리자인데 현 상황에 비춰볼 때 권한을 준 국민의 다양한 가치를 포용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통합만 강조하다보면 권위주의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기에 각자 가지고 있는 특성을 지닌 채 어우러진 ‘샐러드보울’형 정치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또한 그는 “현 정부의 정치 방식은 ‘스트롱맨 스타일’이라고 보여질 수 있다. 가부장적 요소가 많은 스트롱맨 정치 스타일은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은 스타일”이라며 “정부가 민주주의의 질적인 진보를 위해 교량적·통합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윤석열 정부, 진보와 보수 아우르는 ‘국가 비전’ 제시해야

김 교수는 진보와 보수의 가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아우르는 분명한 국가비전이 제시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진보와 보수는 기본적으로 평가 기준부터 다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취임 초기부터 30%대의 지지도를 기록한 건 보수 유권자 내부에서조차 윤 정부에 대한 평이 나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윤 정부가 내세워온 ‘국익·실용·공정·상식’의 가치 자체는 의미가 있으나 이를 통해 ‘이런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은 게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성공여부를 떠나 전 정부들은 나름대로 고유한 국가비전이 있었다”며 “예컨대 노무현 전 정부는 국가균형발전, 이명박 전 정부는 선진일류국가다. 직전인 문재인 정부만 하더라도 국가 정상화를 전제로 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제시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윤석열 정부와 이명박 전 정부의 공통점이 언급되는 만큼 이에 빗대어 보수 정권의 경제 정책 방향에 대해 조언했다. 그는 “지난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전 정부는 한때 미국의 4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금융위기 징조가 있었음에도 이를 잘 극복했다”며 “이는 보수 정부라 하더라도 경제 전반을 시장의 자율에만 맡기지 않고 국가의 적절한 개입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가의 시장 개입 정도, 국회와 지자체의 역할, 협치 방식과 같은 방법에 있어선 진보·보수 정권 간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다만 대통령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현재의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점점 더 서민과 중산층의 삶이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정부가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고 국회와의 협치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지지율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한 수치이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이 결단해 국회와 협치를 통해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고 국민들의 지지 속에서 위기를 타개해나가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 국민의힘, 정부와 야당 이어주는 ‘여당다움’ 회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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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국민의힘이 권력의 주체인 여당으로서 정치적 책임윤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권여당이 앞선 정부를 비판하는 측면에 치우쳐 민생의 삶을 책임지고 화합을 도모하는 부분에 있어서 부족하다는 견해다.

김 교수는 “국민의힘이 앞선 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에 치우쳐 비판을 위한 비판을 이어가는 것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며 “전 정부의 정책 중 계승할 부분에 대해선 과감히 이어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국가적 과제와 정권적 과제를 나누고 국가적 과제는 계속 추진하는 것이 ‘여당다움’의 조건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국가적 과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적극적으로 이어가야 한다. 예컨대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인한 균형발전이 이에 해당한다”며 “반면 소득을 증대시켜 경제를 활성화 시키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은 정권적 과제에 해당, 이는 선택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의힘은 국가적 과제와 정권적 과제의 분리를 명확히 해 정책을 추진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지금 같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진정으로 윤 정부를 돕는 길은 올바른 정치 판단력을 발휘해 정책의 계승 여부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 경기도, 협치의 영역 넓히는 결단 보여줄 때

김 교수는 경기도의회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78 대 78 의석수로 팽팽한 갈등을 빚고 있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새로운 협치 방식이 요구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김동연 지사가 유능한 경제 관료 출신이라는 평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인정되고 있지만 정치가로서의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만큼 협치의 결단을 보여줄 때”라며 “얼마 전 김 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협치의 새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고 평했다.

이어 그는 “도의회에서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모두 전체 도민의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수용해야 한다”며 “보수와 진보가 정치공학적 계산만으로 적대적 이분화 되지 않도록 협치를 바라는 도민의 뜻을 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다만 김 지사가 수도권 협의체에 대한 모습을 보여준 건 협치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로 해석된다”며 “김 지사와 오 시장의 경우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인 만큼 협력적 경쟁, 경쟁적 협력을 활발히 진행해 과거와 다른 협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끝으로 그는 “수도권은 쓰레기 매립지, 교통 문제 등 맞부딪히는 영역이 많아 이러한 건강한 경쟁의 혜택이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 세 사람 모두 합리주의적 성향을 가진 만큼 지역을 잇는 협력의 시너지를 잘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의 이음 협력이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기 교수는… 

1960년 양주 출생으로 1979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입학했다. 이후 1985년 유학길에 올라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2년부터 현재까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5년 한국사회학회 총무, 2002년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2017년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 및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2021년 국무총리실 특별보좌관 등을 지냈다. 그의 저서 ‘한국의 시민사회, 현실과 유토피아 사이에서’는 200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 이 외에도 ‘세계화 시대의 시대정신’, ‘시대정신과 지식인: 원효에서 노무현까지’ 등의 저서 활동을 했다.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 등 라디오에도 출연하며 대한민국 정치 담론에 대해 꾸준히 의견을 내고 있는 진보적 지식인이다.

최현호·손사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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