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 70세 넘어 첫 개인전… 나뭇잎 글씨 '잎과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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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부터 29일까지 일산동구청 2층 갤러리 가온에서 진행되는 이찬복 개인전 '나뭇잎 글씨, 잎과 먹'에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투박하고 자유로운 글씨에서 한 노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일반 양모가 아닌 나뭇잎의 예측할 수 없는 질감이 묻어난 글씨는 유독 시선을 붙잡는다.

70세가 넘은 노년의 서예가는 40여 년간 자연과 동행하고, 산에 오르면서 꾸준히 글씨를 써 왔다. 화선지에 눌러담은 진심을 만날 수 있는 이찬복 서예가(73)의 첫 개인전 ‘잎과 먹’이 고양특례시 일산동구청 2층에서 지난 29일까지 진행된 데 이어, 31일부터 내달 10일까지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갤러리 누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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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40여 년 간 함께해온 서예는 삶의 동반자와 다름 없다. 그는 기술직에 종사해오면서도 근무 이외 시간을 활용해 서예를 배웠다. 그랬던 그는 10여 년 전, 그라인더 사고를 당해 오른손에 치명상을 입었다. 근육과 신경 등을 연결하고 봉합하는 등 대수술을 거치고 나니 손에 감각이 없었다. 좌절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작가는 생계를 챙겨야 했고, 가족들을 저버릴 수 없었기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처음엔 되는 대로 가까운 뒷산에 올랐다. 그저 굴러다니는 돌과 나뭇가지들을 쉴 새 없이 쥐었다 폈다 하며 악력이 돌아오길 바랐다. 그렇게 몇 년 간 전국의 산을 돌다 보니 기적처럼 변화가 찾아 왔다. 그는 “의사들이 다 안 된다고 했죠. 그런데 산에 꾸준히 오르다 보니 손에 감각이 서서히 돌아 오더라고요.”

이후 그의 손에는 나뭇잎 붓이 늘 들려 있다. 나뭇잎으로 만든 붓 역시 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산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으니 서예를 할 때도 산의 기운을 받는다면 내면의 목소리를 더 잘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그는 북한산, 지리산 등 전국의 산을 돌면서 나뭇잎을 채취해 붓 제작에 돌입했다. 잘 말려 형태를 잡아 놓은 나뭇잎 뭉치에 소금물을 먹인 뒤 여러 차례 찌고 말리는 시도 끝에, 3년 남짓 흘러 마침내 붓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상수리나무, 도토리나무, 대나무, 소나무 등 전국 각지의 산에서 채집해온 각양각색의 나뭇잎들이 붓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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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부터 29일까지 일산동구청 2층 갤러리 가온에서 진행되는 이찬복 개인전 '나뭇잎 글씨, 잎과 먹'에 나뭇잎 붓과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오랜 기간 캘리그라피 작업도 병행한 덕분에 전시는 다양한 서예 작품과 캘리그라피 작품들이 균형감 있게 배치돼 있다. 먹물을 적당량 희석한 뒤 붓을 털어내는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들도 볼 수 있어 도구의 활용에 따른 서예의 다양한 표현법도 느껴지는 전시다.

이렇듯 배치된 글씨들을 가만히 살피다 보면, 문득 글씨 한 획 한 획의 질감이 기존의 서예 작품과는 확연히 달라 보이는 작품이 여럿 눈에 밟힌다. 정갈함과는 거리가 먼, 거칠게 꿈틀거리는 글자들이 벽면에 늘어서 있다. ‘흙’, ‘길 도’, ‘청춘’, ‘연풍(산들바람)’ 등 각각의 글자들이 나뭇잎으로 쓰여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양모가 아닌 나뭇잎 붓으로 적힌 글자에선 자연에 대한 애정과 예찬, 강렬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이 작가는 첫 개인전을 열고 나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껏 치열하게 살면서 뒤돌아볼 여유는 없었다”면서 “작품들에 녹아 있는 내 삶을 이번 전시를 통해 비로소 돌아볼 수 있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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