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사랑과 용납이 순환되는 나라

image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

어느 설교가는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세대를 빗대어 ‘칠면조의 세대’라고 논평했다. 칠면조들은 함께하던 무리 중에 한 마리가 등에 상처를 입게 되면 같이 지내던 다른 칠면조들이 모두 달려들어 상처 입은 칠면조를 쪼아 그 상처에서 피가 나고 쓰러질 때까지 공격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칠면조들이 상처 입고 어려움 당한 칠면조를 더욱 공격해 쓰러뜨리는 모습이 마치 오늘의 이 세대의 ‘약육강식’ 모습과 동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포스트모더니즘시대는 한 개인의 자기 느낌과 자아의 주관적인 경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신 사조를 가지기 때문에 공감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사조가 굳어지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마음의 공간을 잃게 된다.

우리는 매일 아침 전쟁의 이야기를 원하지 않아도 듣고 보고 있다. 강한 나라가 작은 나라를 향해 힘의 논리로 전쟁을 일으키고 많은 사상자를 만들어 내는 모습이 마치 칠면조들이 상처 입은 약한 칠면조를 공격해 물어뜯는 짐승들과 다를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통해 인간애를 배우게 된다. 용납해주고 사랑해주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인간된 자신의 존재를 바르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예수님 앞에 발가벗겨진 한 여인이 사나운 남자들에 의해 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끌려왔다. 그녀는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당시 유대교의 법으로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된 여인이었다. 당시의 종교법으로는 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돌로 쳐 죽여야 했다. 그런데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친 예수님이 그녀를 돌로 쳐 죽이라고 하면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이유를 예수님까지 거짓 선생으로 몰아서 돌로 치려는 아주 나쁜 계략을 예수님은 아셨다. 피가 흐르는 돌을 들고 광분해 있는 그들에게 이성적인 정신을 차릴 시간을 예수님은 기다리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들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이 여인을 돌로 치라.” 그리고 그분은 침묵하며 광분한 사람들을 기다리셨다. 그러자 돌을 들고 흥분해 있던 사람들은 한 사람씩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떠났다. 광분을 용납하고 기다리심의 시간을 예수님이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피를 흘리며 두려움에 떨며 고통하는 그 여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여인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돌을 들고 정죄하던 자들도 용납하시고 죄를 지은 여인도 용납하시는 판결이었다.

멋지게 사람을 용납해주는 사회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다. 사랑해주고 이해해주고 용납하는 문화와 풍토가 내 조국 대한민국에 아름다운 강이 되어 흘러가기를 기도하며 기대해 본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