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안의 며느리인 친구는 명절을 싫어한다. 특히 전(煎) 부치는 게 지겹고 힘들단다. 어느 해부터인가, 친구는 시장에서 전을 사갔다. 시어머니는 예쁘게 부쳐진 전을 보고는 “시장에서 사온거지?”라며 못마땅해했다. 조상님께 올리는 차례상에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친구는 다음 명절에도 전을 사갔다. 이번엔 반듯하지 않은 못생긴 전으로. 시어머니는 직접 부쳐 온줄 알고 흡족해했다.
명절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여행지에서 차례를 지내는 가족도 있고, 온라인으로 음식을 배달받아 간소하게 지내는 가족도 있다. 반면 아직도 기름 냄새 풍기며 전을 부치고 격식을 갖춰 차례상을 차리는 집안도 있다. 며느리들은 여전히 힘들고,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요즘은 남자들이 전을 부치는 경우가 많다.
성균관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차례상에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을 반드시 올릴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런 음식을 써 제사 지내는 게 예가 아니라는 기록이 사계 김장생 선생의 ‘사계전서’ 제41권 의례문해에 나온다 했다. 또한 그간 차례상 차리는 예법처럼 여겨왔던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밤·배·감)’는 예법 관련 옛 문헌에 없는 표현으로, 음식을 편하게 놓으면 된다고 했다. 조상의 위치나 관계 등을 적은 지방(紙榜) 외에 사진을 두고 제사를 지내도 된다고도 했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표준안에 따르면 추석 차례상의 기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적·炙), 김치, 과일, 술 등 6가지다. 더 올린다면 육류, 생선, 떡을 놓을 수 있다. 이렇게 상차림을 하는 것도 가족이 합의해 결정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명절만 되면 ‘명절증후군’과 ‘남녀차별’이라는 용어가 난무했다. 성균관이 진작 이런 발표를 했더라면 명절 스트레스도 줄이고 명절 이혼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성균관의 발표에도, 내 친구는 이번 추석에도 전을 사갔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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