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1월 2천619억 달러, 올해 1월에는 14년 전보다 2천억 달러가 많은 4천615억 달러, 그리고 9개월 동안 2008년에는 222억 달러 감소했던 반면, 올해는 그 두 배가 넘는 463억 달러 감소하며 4천168억 달러까지 줄어들어 심리적 마지노선인 4천억 달러를 위협하고 있다. 사실, 보유 외환의 90% 이상이 채권이고, 최근 채권 가격의 급락을 고려하면 (매수가격으로 평가된) 외환보유액은 4천억 달러가 무너졌을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환율은 화폐의 대외적 가치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환율 안정은 화폐주권의 영역이다. 정치인을 포함해 많은 한국인은 화폐주권을 얘기하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군사주권은 쉽게 납득하면서 경제주권과 화폐주권은 관심조차 없다. 현대 전쟁은 군사 전쟁이 아닌 경제 전쟁, 금융 전쟁이라는 말을 하면 끄덕거리면서 말이다. 금융 전쟁에서 패배했을 때 그 결과를 우리는 경험하였다. 1997년 말 IMF에게 구제금융을 받으며 시작된 외환위기를 당시 언론은 ‘단군 이래 최대 환란’으로 묘사까지 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95년 약 1만3천4백 달러에서 98년에 약 8천3백 달러로 약 40%가 줄어들었다. 수많은 실직자와 사업체 도산 등으로 가정이 해체되며 서울 길거리에 노숙자가 본격적으로 출현한 것이 외환위기 충격의 한 단면이다. 채권국들은 IMF를 내세워 대한민국의 경제정책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간섭하였다. 자신들의 채무를 온전히 회수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경제주권을 접수(?)한 것이었다.
다시는 환란을 겪지 않기 위해 한국경제는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해도 빠지지 않고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올해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원화가치 하락 속도가 주요국 중 가장 빠르게 진행하며 환율 방어에 보유 달러를 투입하다 보니 올해 외환보유액 감소의 70% 이상(325억 달러)이 윤석열 정부에서 진행되었다. 외환보유액의 감소는 한・미 간 금리차 확대 등과 더불어 원화 가치 추가 하락에 베팅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당국의 태도이다. 통화와 재정 당국 책임자인 한은 총재와 기재부 장관 모두 가능하지 않던 한미통화스와프(9월 칼럼 참고)에 매달리며 국민을 희망고문(?)하다가 이제 와 통화스와프(효과)에 부정적이라며 발을 뺀다.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하고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서 세계 8위의 외환보유를 거론하며 2008년 금융위기 상황과 다르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런데 2008년에도 외환보유 규모는 세계 6위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던 2008년 2월 말 원/달러 환율은 940원대에서 그해 말 1,500원을 돌파하고, 2009년 3월 초에는 1,570원까지 돌파하였다. 당시 연준은 미국의 필요에 따라 한국은행에 2008년 10월 30일부터 2009년 4월 30일까지 6개월간 3백억 달러 규모의 스와프 창구를 열어주었다. 그런데 1,400원대에서 1,238원까지 하락시켰던 스와프 효과는 한 달도 가지 않고 11월 24일에는 1,500원대를 돌파하였다. 이처럼 달러 스와프는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원/달러 환율은 기본적으로 달러 인덱스와 같이 움직였다. 제로금리까지 인하한 공격적 금리 인하와 뒤이은 양적완화 개시 선언에 따라 달러화가 약세로 전환하며 원/달러 환율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원화 가치 하락폭이 가장 크듯이 2008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금융위기가 현실화하기 시작한 2008년 여름 대비 원화 가치는 약 60%가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한국보다 외환보유가 적은) 싱가포르와 대만 달러의 가치는 각각 15%와 16% 정도밖에 하락하지 않았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 기조의 정착으로 외환보유의 절대 규모는 크게 증가한 반면, 우리나라 경제 규모(GDP)에 비해 많이 미흡하다. 싱가포르와 대만이 GDP 대비 외환보유액 비중을 각각 90%와 80% 안팎을 유지하는 반면 한국은 25% 정도에 불과하다. 적정 외환보유액에 대해 여러 기준이 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새로운 (외화)자금 확보가 어려울 수 있는 상황에서 (식량이나 에너지 등을 포함해) 한 나라가 필요로 하는 수입액과 (단기간 내) 상환해야 할 대외채무 등을 방어할 수 있는 규모일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경상수지 흑자액은 무려 1조 118억 달러나 된다. 외환보유 축적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 금융(자본) 논리로 정책을 운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정책 중 가장 핵심 수단이 통화정책이고, 통화정책은 화폐가치의 안정(물가안정)을 전제한다. 여기에 자신의 통화가 기축통화가 아닌 나라의 경우 자기보험 차원에서 충분한 외환보유를 확보해야만 갑작스러운 자본유출 시 외환위기를 방지할 수 있고, 외환보유 축적을 위해 경상수지 흑자 유지와 이를 위한 환율 경쟁력이 필요하다. 미국이 주요 교역국들을 대상으로 무역과 경상수지 흑자 규모, 환율 개입 등을 감시하는 이유도 미국 통화정책의 자율성 확보, 즉 화폐주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미국이 설정한 기준을 무시하면서 독일, 싱가포르, 대만, 스위스, 베트남 등이 경상수지 흑자와 환율 경쟁력 확보에 전력을 다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반면 위기 때마다 한국에서 부상하는 외환위기 우려는 미국 요구를 잘 따르는 한국이 치르는 비용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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