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은 비겁한 행위를 보면 곧잘 ‘더럽다(Dirty)’고 표현한다. ‘더티봄(Dirty Bomb)’이란 군사용어는 그런 연유로 만들어졌다. 하긴 무기 중에 ‘더럽지 않은’ 게 과연 있을까.
▶더티봄은 군사학적으로는 방사능 오염에 특화된 핵무기를 가리킨다. 폭발력보다는 방사능 확진에 치중한다. 서울에서 열렸던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이미 논의됐었다. 10년 전이었다. 개발하거나 사용하느니 그냥 핵무기를 만들어 발사하는 게 가성비가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더티봄은 정식 핵무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니트로글리세린의 화학반응에만 의존하는 폭탄도 아니다. 재래식 무기에 방사성 물질을 넣어 만들어서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쓰이진 않았지만, 이를 이용한 테러가 시도된 적은 몇 차례 있었다.
▶맨 처음은 1995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였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이었다. 당시 체첸 반군이 세슘-137과 다이너마이트를 조합한 더티봄을 모스크바 이즈마일로브 공원에서 터뜨리려다 미수에 그쳤다. 2002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장소는 미국이었다.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영향을 받은 미국인이 시카고에서 더티봄 테러를 모의하다 체포됐다.
▶러시아가 느닷없이 연일 우크라이나가 더티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 배경이 석연찮다. 러시아가 핵무기 등 더욱 강력한 전쟁 수단을 동원하기 위한 꼼수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거짓 깃발(False Flag)’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서방의 지원 의지를 약화시키려는 술책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평판을 깎아내리기 위한 술책일 수도 있겠다.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쿨레바 외교장관은 “더티봄을 사용할 건지 조사해보라”고 주장했다. 물타기 전략이든 뭐든 더티봄 사용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순 없다. 그게 실체적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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