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호갱님’ 모십니다… 인천 원도심 ‘홍보관’ 극성

빈 상가 사무실 얻어 40~60대 중장년층 타깃
미끼상품 던져 저가 옥장판 등 고가에 팔아
警 “신고 꺼려… 피해 확산 우려” 주의 당부

지난 4일 오후 1시께 인천의 한 낡은 상가건물의 3층 사무실에 40~60대 여성들이 간이 의자에 줄지어 앉아 있다. 이날 이곳을 찾은 여성은 100여명에 달했다. 독자 제공

지난 4일 오후 1시께. 인천의 한 낡은 상가건물로 40~60대 중장년 여성들이 줄지어 들어간다. 이들이 찾은 곳은 이 건물 3층의 한 사무실. 예전에 PC방을 운영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3층 입구 옆에 긴 탁자가 보이고 맨 앞줄엔 교회에서나 봤던 긴 의자 뒤로 간의 의자 100여개가 놓여 있다. 탁자 앞엔 직원으로 보이는 4명의 40~50대 남성들이 서 있다. 이들은 이곳을 찾은 여성들로부터 돈을 받고 티켓을 나눠주고 있다. 바로 옆 매표소로 보이는 곳에선 한 남성이 티켓을 받은 뒤 물건을 나눠주고 있다. 사무실 벽 쪽에 있는 긴 탁자 위엔 믹서기와 화장품, 전골냄비, 에어프라이기, 옥장판 등 각종 상품이 전시해 있다. 탁자 양 끝에 설치한 모니터에선 연예인이 특정 상품을 홍보하는 영상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10분 정도 지나니 이곳 간이 의자엔 40~60대 여성 100여명으로 가득했다. 자리가 없어 뒤편 테이블 앞에 서있는 여성들도 있다. 이들은 오늘은 무슨 상품을 얻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날 오후 1시31분께 입구에 서 있던 남성 4명이 모두 안으로 들어 온 뒤 문을 닫는다. 정장을 입은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마이크를 잡고 서서 이곳을 찾은 여성들에게 인사를 한다. 다른 남성들은 감시하듯 여성들 주변을 서성인다. 이들은 몇몇의 여성에게 티켓을 나눠주거나 현금 천원을 여성들 손에 쥐어 주기도 한다. 마이크를 든 남성은 화려한 언변으로 여성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이곳 여성 대부분은 천원짜리 지폐를 꺼내들어 주변을 돌아 다니는 남성에게 주고 티켓을 받는다. 티켓은 이날 미끼 상품인 소고기와 교환한다. 지난 4일간의 미끼 상품 목록을 설명한 마이크를 든 남성과 이곳을 찾은 여성들은 이 남성이 말을 할 때 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반겼다. 4시간 뒤 이곳을 찾은 여성 대부분은 소고기가 담긴 것으로 보이는 검은 봉지를 손에 들고 나온다. 일부 여성은 옥장판이 담긴 박스나, 믹서기가 담긴 박스를 들고 나와 집으로 향한다.

인천 원도심의 빈 상가에 사무실을 얻어 미끼 상품으로 65세 이하 여성을 유혹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물품을 파는 일명 홍보관이 성행하고 있다.

6일 홍보관을 방문한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곳은 65세 이하 여성만 출입이 가능하다. 3~6월 1학기, 9~12월 2학기라 부르며 이 기간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소고기, 고등어, 오징어 등의 미끼상품을 천원에 살 수 있다. 지난 1학기의 경우 미끼 상품을 사러 왔다가 옥장판 등 물건 5천만원 이상 구입한 여성만 2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끼 상품에 낚인 이들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 어치 물품을 구입했다.

피해자 A씨(62·여)는 “처음엔 천원짜리 미끼상품으로 소고기나, 오징어 등을 살 수 있게 했다”며 “나중엔 150만원짜리 옥장판을 사라고 하는데 미안해서 안 살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해당 옥장판을 현장에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150만원에 팔고 있었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물품을 카드로 결재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옥장판 가격이 10여만원에 불과했다. 그때서야 사기인 걸 알았다”고 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인지한 후 이곳을 찾지 않았지만, 일부 여성은 이곳에 빠져 수천만원의 물품을 사 놓고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B씨(여·46)는 “지난 1학기에 홍보관을 다니면서 2천500만원어치 물품을 구매했는데 후회는 없다. 이곳을 다니면서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이먹고 뚱뚱해지면서 사람들 만나는데 자신감이 떨어지고 외로웠는데 이곳에서 남성들이 나를 추켜세워주고 말을 걸어주고 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행복했다”며 “현재는 살도 많이 빠졌고 성격도 활발해졌다. 홍보관을 간 이후 삶이 달라졌다”고 했다.

과거 자식들에게 소외 받는 농촌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홍보관을 열고 잘해주는 척 접근해 각종 물품을 팔았던 것이 현재는 타깃을 65세 이하 여성으로 설정해 성행하고 있다. 피해 특성상 신고가 잘 이뤄지지 않아 음지에서 알음알음 성행하고 있지만, 경찰이 단속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홍보관 등에서의 피해는 특성상 신고가 잘 이뤄지지 않아 제3의 피해가 있을 수 있다”며 “가격을 부풀리거나 인터넷에 허위로 제품을 올리는 등의 행위는 사기로 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승기 법무법인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는 “과거 유행했던 노인 대상 홍보관이 새로운 형태로 변질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노인과 주부 모두 스마트폰 사용에 능숙하기에, 양질의 제품을 저렴하게 판다고 이야기해도, 이를 인터넷으로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해당 업체는 인터넷상 가격을 일부 조작하는 수법으로 저가 제품을 고가로 팔아 적게는 몇 배 크게는 몇 십배 차액을 챙긴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는 허위 또는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해 소비자를 유인해 판매를 한 것”이라며 “방문판매법 위반 및 사기죄 성립이 가능하다. 만약 판매한 제품이 음식이나 건강식품도 있다면 식품위생법 및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위반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주영민·이민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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