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라져가는 근대문화유산, 보존·활용 방안 마련해야

수원시 팔달구 교동에 100여년 된 옛 ‘부국원(富國園)’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지어진 2층 콘크리트 건물이다. 당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삼각형의 아치형 박공지붕 등 독특한 외관이 멋스럽다. 건물은 종자와 비료 같은 물품을 판매하던 ‘주식회사 부국원’이 사용하던 것으로, 식민지시대 일제의 농업 침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부국원 건물은 광복 후 법원, 교육청, 수원예총 등이 사용하다 개인에게 팔려 병원과 인쇄소로 운영됐고, 개발로 2015년 철거 위기에 놓였다. 그러자 시민사회단체 등이 일제강점기 수원 역사가 담긴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수원시가 매입했고, 2017년 등록문화재 제698호로 지정됐다. 수원시는 옛 부국원 건물을 근대역사문화 전시관으로 재탄생 시켰다.

부국원은 철거될 뻔한 근대문화유산을 지자체와 시민이 지켜낸 모범 사례다. 하지만 경기도내 상당수 근대문화유산은 무관심 속에 훼손·방치되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탓에 각종 개발로 가치있는 근대문화유산이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근대문화유산은 정확한 통계도 없다. 일부 지자체에선 나름대로 관리를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다.

파주시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가치를 지닌 근대문화유산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미래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그리고 임진강 철교, 교하초교, 금촌통일시장 등 8곳을 파주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미래유산은 지역사적으로 주민들에게 유의미한 사건, 인물, 이야기 등이 담긴 유·무형 자산이 대상이다. 미래에 문화재로 등재할 수 있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보존하고 지역민의 집단기억과 감성을 보존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지자체가 선정하는 미래유산은 등록문화재와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어 소유주 등에 의한 멸실, 훼손 우려 등이 있다. 비지정문화재는 경기도에서 관리하지 않는다. 각 시·군에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의미있는 건물이나 흔적 등이 그냥 사라질 수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미래유산과 비지정문화재도 문화재와 마찬가지로 법적 테두리 안에서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6·25전쟁 이후 근대문화유산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학술적·사료적 가치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쳤거나 지역사적으로 의미있는 문화유산은 보존해야 하는데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근대문화유산 보존·활용 방안을 고민하는 사이 건축물 등이 사라져가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지자체별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와 문화유산의 보존 가치를 인식하고 협력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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