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송화 작가 ‘루페’] 제주 4·3사건, 장편소설로 피어나다

제주 4·3사건 독자들에 알리면서도 흡입력 있게 새 이야기 구성 덧붙여
흥미진진한 이야기… 몰입감 압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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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편소설 ‘루페’, 강송화 작가

1947년부터 7여년간 일어났던 제주 4·3사건.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들’만의 아픔이었고 ‘그들’만 알고 있던 사건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었던 이 사건을 긴장감 넘치는 서사로 풀어낸 장편소설이 발간됐다. 2007년 미주 한국일보 공모전 소설부문에 등단해 2010년 단편소설집 ‘구스타브쿠르베의 잠’(2010년), 중편소설집 ‘빨간 연극’(2019년) 등을 발간한 강송화 작가의 장편소설 ‘루페’(도화 刊)다.

책은 6·25이후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일상과 사랑, 이들이 이룬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제주 4·3사건으로 가족과 마을을 송두리째 잃고 생존을 위해 독일의 광부로 간 차혁, 그가 탄광에서 발견해 낸 블루스톤이 국제 테러 조직과 연계되면서 이야기는 거침없이 흘러간다.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살았던 차혁이지만 차혁은 끊임없이 제주 4·3사건의 아픔을 잊지 못한다. 블루스톤을 팔아 고향에 있는 가족과 몰살된 주민들을 위해 사용하려 하면서 비극의 소용돌이로 휩쓸린다. 이 과정에서 독일 경찰과 미국 CIA가 연계되고 블루스톤은 그의 이란성 쌍둥이 딸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소설은 강송화 작가 특유의 사물에 대한 오랜 응시와 차분한 묘사, 긴 호흡으로 벼린 언어가 투명하고 강렬하다. 특히 제주 4·3사건을 독자들에게 알리면서도 흡입력 있게 새로운 이야기의 구성을 덧붙여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몰입감이 압도적이다. 제주 4·3사건을 여러 겹의 경계를 통해 다루고 주인공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와 끊임없이 확장되는 서사는 치밀하고 정교하게 호흡을 끝맺는다. 여러 장치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독자를 끌어들이면서도 책은 본질적인 질문을 잊지 않는다. ‘제주 4·3사건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은 무엇인가, 또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사건의 중심에 있는 보석에 관한 세밀한 묘사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보석을 전공하면서 이와 관련된 장편을 쓰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는 저자는 비극적인 역사를 대중이 알게 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풀어나가면서 보석과 접목해 글로벌한 이야기로 서사를 끌고 나간다. 남성적이면서도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이야기 속 펼쳐지는 세밀한 구성이 흥미롭다.

저자가 제주 4·3사건을 다룬 것은 5년여 전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참가한 제주 4·3 심포지엄에서 그날의 역사적 비극을 전해 들으면서다. 그는 “우리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에 대한 엄숙주의와 이념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여 대중들에게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면서 “그게 작가가 해야 할 일이자,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책은 오랜 집필 과정을 끝낸 이후 4년 만에 나왔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한풀 가라앉은 지금, 그래서 더욱 반갑기도 하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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