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이태원 참사와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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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민 경인여대 영상방송학과 교수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그대로 보여준다. 참사의 원인과 배경을 놓고 경찰 수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제대로 밝혀지고 풀려지기는 난망해 보인다. 모든 병폐가 얼기설기 얽혀 있기 때문이리라.

필자는 그 근본 원인이 ‘불통’이라고 본다. 소통이 아닌 불통. 직접적으로는 당시 좁은 골목에 터질 듯 몰린 인파 간에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쉴 새 없는 대책과 구조 요청에 경찰과 소방 당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를 관장하는 행정안전부 등 정부 당국도 마찬가지였다. 불통이다. 용산구와 서울시도 지자체로서 구민과 시민의 안전 대책을 소홀히 했으며, 재난 시 역할도 제대로 못했다. 이 와중에 사실과 진실 파악보다는 정쟁에 이용하려는 일부 언론과 세력도 마찬가지다. 역시 불통이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바벨탑’에 관한 짧고도 매우 극적인 일화가 실려 있다. 드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고자 했던 인간들의 오만한 행동에 신은 분노한다. 탑을 쌓기 위해서는 아래에서 위로 벽돌이 잘 올라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하는 사람 간에 같은 뜻을 지닌 하나의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분노한 신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 바벨탑 건설은 결국 혼돈 속에서 처참히 그 막을 내렸다. 하늘에 닿는 탑을 세우고자 했던 인간들은 불신과 오해 속에 서로 다른 언어들과 함께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불통의 시대에 사는 오늘의 우리들 역시 되지도 않을 바벨탑을 막무가내로 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관심과 불신과 오해 속에 곧 무너져 내릴 비극을 생각지도 못한 채.

인간은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사는 사회적 존재다. 인간(人間)이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의미로,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존재’를 의미한다. 즉, 인간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간관계’의 뜻을 담고 있다.

이 인간관계의 기본이 ‘소통’이다.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이 소통이다. 오해가 없음을 이른다. 즉, 모름지기 인간관계는 서로 막히지 않고 오해 없이 뜻이 잘 통하는 소통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와 인간관계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불통의 이태원 참사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소통이 아닌 불통인 것이다. 더 이상 불통의 바벨탑을 쌓아선 안 된다. 이제 불통의 시대, 불통의 사회를 접고 더 늦기 전에 조금씩이라도 ‘열린 소통’으로 나아가야 하겠다. 그것이 우리를 살리는 길이다.

윤세민 경인여대 영상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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