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미얀마 3천원 축구화’를 보면서

실패한 사회주의, 정치 불안
國家 가난이 노동 착취 초래
‘새마을공장’ 우리 가난 기억

노무현 정부 시절 영상이다. 2006년 7월3일, EBS가 방영한다. -1천620번의 손 박음질. 서른 두 조각 이어 붙이기. 8시간 일해 2개 완성. 축구공 가죽을 든 파키스탄의 어린 노동자. 나무처럼 딱딱하고 지문도 없어진 작은 손. 공 하나 만든 대가 150원. 거대 스포츠 기업 아디다스의 수입 1조2천억원.- 영상이 향하는 결론은 아동 노동력 착취다. 1998 프랑스 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의 이슈가 됐다. 월드컵에 노동자 인권이 개입된 시초다.

이번 월드컵에는 축구화인 것 같다. 미얀마 양곤의 푸첸그룹 공장이 있다. 아디다스 축구화를 만드는 곳이다. 뉴욕타임스가 그 공장의 노동 현실을 보도했다. 직원들의 일당은 4천800짯(한화 2천944원)이다. 월드컵을 앞둔 지난 10월 파업했다. 2천원 정도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군이 투입됐고 파업이 진압됐다. 노조 지도부를 포함해 26명이 해고됐다. 몇몇 국내 언론이 쓴 제목은 이렇다. ‘월드컵 축구화, 일당 3천원 미얀마 노동자가 만든다.’

안 그래도 인권 문제 많은 월드컵이다. 중동의 반인권 문제, 성소수자 인권 문제 등이다. 이란 선수들은 국가(國歌)를 부르지 않았다. 국내 반인권에 대한 저항이었다. 독일 선수들은 입을 가리고 촬영했다. 카타르의 이주노동자 인권 탄압에의 항의였다. 그래도 한국 언론이 가장 많이 전한 것은 노동이다. 축구화 제조사인 아디다스의 ‘노동력 착취’를 가장 많이 보도했다. 때마침 우리 현안도 노동 문제라선가. 화물연대, 민주노총 파업이 얽혀 있다.

한 번쯤 생각하고 갈 일이다. 이번 축구화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아디다스에 의한 노동력 착취가 그 본질인가. 아디다스가 미얀마를 떠나면 다 해결되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영상이 있다. 미얀마 현지 노동자의 목소리가 담겼다. 인터뷰어(interviewer)는 한국 사람이다. 유튜브 비즈니스 회사 운영자로 보인다. 인터뷰이(interviewee)는 21세 미얀마 여성 ‘닌니’다. 공개채용에 지원한 현지인이다. 근로 조건 등을 서로 묻고 답한다.

-(경력은) 봉제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거기서 봉급은) 9만짯(한화 약 8만원) 받았습니다. (부족함은 없었나) 없었습니다.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일했습니다. (휴식 시간은) 점심시간에 30분 줍니다. (사는 곳은) 택시로 30분, 버스로 1시간 걸립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근무 괜찮나) 괜찮습니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나) 내일부터요.- 일반적 노동 조건이 다 나온다. 하루 노동 10시간 30분, 휴식 30분, 일당 3200원....

일당 3천원이 아디다스 공장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닌니’가 일했던 봉제공장 노동자 봉급도 그랬다. 격한 노동 시간도 아디다스 공장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닌니’가 일했던 봉제공장도 10시간30분 일했고 30분만 쉬었다. 미얀마 노동자의 평균이 딱 그랬다. 이쯤 되면 아디다스 아닌 다른 곳의 문제임이 명백하다. 바로 국가다. 가난한 국가라서 시작된 착취인 것이다. 인도차이나반도 최빈국으로 추락시킨 미얀마의 책임인 것이다.

노동자 세상을 약속하는 사회주의가 거기 있다. 1962년부터 26년을 실험했다. 기업을 국유화했다. 외국 무역을 막았다. 외국 차관도 거부했다. 차라리 쇄국이었다. 카를 마르크스보다 더 공산(共産)에 가까웠다. 그들 스스로 ‘비르마식 사회주의’라고 자랑했다. 그러다 손을 들었고, 1988년에야 시장경제를 받았다. 잠시 고성장 기세를 탔다. 하지만 이내 쿠데타 등 정치 불안으로 무너졌다. ‘3천원 축구화 비극’을 초래한 빼도 박도 못할 책임이다.

우리가 가난했던 1970년대. 마을마다 새마을공장이 있었다. 방직기계가 주야 없이 돌아갔다. 그 기계를 10대 여공들이 지켰다. 그 섬유로 옷 만들어 세계에 팔았다. ‘가난한 한국의 소녀 노동자들이 중학교도 못 가고 일당 1천원 받으며 만든 옷’이었다. 모든 게 국가가 가난해서였다. 다행히 우리는 타고 넘었다. 그 극복의 역사도 국가가 썼다. 국가가 부자되면서 노동자도 부자됐다. 노동력 착취는 사라졌고, 이제 월드컵을 개최한 국가다.

실패한 사회주의와 불안정한 정치가 가져오는 가난. 그 가난이 초래하는 노동 인권의 착취. 미얀마 ‘3천원 축구화’가 때맞춰 우리를 때려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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