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는 몽환적이다. 어디로 가기도 어디서 오기도 하는 항구. 뱃고동 소리가 해무에 묻히기라도 하면 꿈과 현실의 경계는 순간 사라진다. 바다에 잠긴 닻이 출항과 회항을 언제나 머금고 있듯, 부두는 섬이나 먼바다로 떠나는 곳이면서도 한편 뭍에 묶여 있다.
부두에 인천 사람의 땀과 이름이 배어 역사가 쌓이면, 부두는 그냥 일반적인 부두가 아니라 지역의 고유한 얼굴을 담은 인천만의 특수한 부두가 된다.
해안가 산책로를 걸으며 수선하는 선박들을 본다. 130여년 전 제물포 근대개항 이후 인천인의 노고가 조선, 기계, 물류 산업이 돼 부두 주변에 독특한 풍광으로 펼쳐 있다.
밀물과 썰물은 자연의 이치다. 민선 8기로 바뀌자, 동구는 부두 활성화 대책을, 인천시는 제물포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만석, 화수, 북성 부두와 몇 년째 재개발을 추진 중인 인천 내항 1·8부두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맨해튼 부두에서 옛 항공모함 갑판 위를 주민과 관광객이 걷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부두에는 범선, 증기선, 예인선, 군함, 잠수함 등 역사적인 배들이 접안돼 선박박물관으로 있고, 부두 창고에는 게임기가 삼백 대나 전시돼 있다. 우주로켓 누리호에 환호하면서도 바다로 무한히 뻗은 인천의 보물 창고들은 그냥 내버려 둘 것인가. 20여년 전 트라이포트를 외치던 기세를 몰아, 인천항과 인천공항, 산업단지와 대학, 국제기구 등을 어떻게 엮을 것인가.
해수부 땅인 1·8 부두를 시가 매입해 더 장대한 그림을 그릴 것인가, 아파트·상가를 지을 것인가. 10조원 이상의 곡물·철강·자동차 등을 수송하는 2~7 부두는 기존처럼 사용하며 후일을 모색하더라도, 1·8 부두를 시민에게 우선 개방하는 묘책은 많다.
화수 부두로 가는 길목에 작은 횟집들이, 만석 부두에는 낚시용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동구청은 작년에 만석·화수 해안가 산책로를 단장했다. 하지만 중장기 계획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낮에는 화물차가 달리고 밤엔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관광만 강조하기보단, 주변 공장들을 효율화, 집적화시켜 산업과 관광을 조화, 특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갯벌에 걸터앉은 선박들과 햇살에 출렁이는 파도를 보라. 1650년 전 한나루 능허대에서 인천항에 이르는 긴 시간여행을 어디서 해보겠는가.
자잘한 표절 시비와 녹취 왜곡, 화보 촬영 논란에 창피한 줄도 모르는 중앙정치꾼은 제쳐 놓고, 인천에서만큼은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꿈같은 일 좀 했으면 좋겠다.
이홍우 해반문화사랑회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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