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로 달리는 마차의 마부는 10m 앞을 봐야 하고 100m 앞을 보면 안 됩니다. 시속 100㎞로 달리는 고속버스 운전사는 100m 앞을 봐야지 10m 앞만 보면 위험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데이터 대항해 시대라 세상이 빛의 속도로 달리는데 우리 운전사(정치)는 10m 앞만 보고 달립니다. 어떤 운전사는 왼쪽(진보)만 보고 달리고 어떤 운전사는 오른쪽(보수)만 보고 달립니다.”
지난달 도시공감연구소(소장 김창수) 초청으로 특강을 했던 박근혜 정부 때 창조과학기술부 차관을 지낸 윤종록 KAIST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차관직에서 물러나는 날, 곧바로 남양주에 있는 다산 정약용의 묘소를 참배할 정도로 정약용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그가 ‘대통령 정약용’이라는 소설을 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약용은 2012년 유네스코가 매년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 3명을 선정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뽑힌 인물. 그렇게 정약용은 실학사상과 혁신정신의 상징적 인물이었으나 당쟁에 희생돼 18년 긴 세월 유배형을 받았고, 유배에서 풀려났지만 1836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윤 교수는 정약용이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이 나라에 당쟁이 심각하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라며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데 한국 정치는 시속 10㎞에 머물러 있음에 실망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정약용이 다시 살아나 대통령이 된다면 ‘생명과학 입국’을 선언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지금까진 산업국가의 모델이 됐던 중화학공업과 정보통신은 이제 거대한 고목(古木)이 됐다는 것이다. 그 대신 의료, 제약, 식품 등 세계 생명과학산업 규모는 18조달러로 정보통신산업의 4배에 달한다고 했다.
그는 또 말한다. 500년 전에는 대항해 시대여서 튼튼하고 안전한 배를 만드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이 그런 경우의 국가라 하겠다.
그러면서 시대는 변화를 거듭해 엔진을 사용하는 선박을 주도하는 국가, 그리고 지금은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선박의 시대를 거쳐 데이터 대항해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인공지능(AI)-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질 수도 없는 데이터의 바다라는 이야기다. 만약 정약용이 살아나 대통령이 된다면 ‘생명과학 입국’을 선언하고 ‘AI산업’에 집중할 것이라는 결론이다. 과연 실학과 혁신의 아이콘 정약용 정신을 나타내는 상상력이라 하겠다.
그런데 정약용을 논하면서 간과할 수 없는 게 있다. 그의 대표적 저서의 하나로 꼽히는 ‘목민심서’. 그는 목민심서에서 관리의 부정부패 그리고 세금 문제에 이르기까지 날카롭게 비판을 가하고 특히 요즘 말하는 국가안보에 대해서도 이렇게 언급했다. “군대를 잘 키우고 훈련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라...또 병기들을 수리하고 보충하며 늘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하며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현실은 어떤가. 북한의 잠수함 공격에 대비한 한·미·일 해상훈련까지 당쟁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정약용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그 당쟁의 유령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생명과학 입국, AI산업, 나아가 국가안보가 제대로 될까 안타깝다. 역시 빛의 속도로 달리는 시대, 10㎞ 앞도 못 보는 우리 정치가 문제인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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