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법] 2023년 꼬리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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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는 11월9일자에서 “투자가들은 매우 빠른 꼬리 리스크(a very fast tail risk)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마크 카니의 경고성 인터뷰를 실었다. 카니는 2008~2013년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 2013~2020년 영국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영국 브렉시트를 겪은 인물이다. 인터뷰에서 카니는 미국채 10년물 수익률, 유동성 부족, 담보 부족 등으로 일어날 수 있는 ‘매우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꼬리 리스크’를 경고하고 있다. 일반인은 고등학교 시절 확률과 통계를 공부하면서 종 모양의 정규분포(확률밀도함수) 곡선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곡선의 좌우 끝, 즉 꼬리 부분은 일어날 확률이 매우 낮은 사건을 가리킨다. 이를 이용해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대규모 자산가치 손실을 초래하는 리스크를 가리킬 때 ‘꼬리 리스크’라 부른다.

일반인에게 글로벌 금융위기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경 시작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금융위기는 1년 전인 2007년 8월부터 조짐을 드러냈다. 2008년 8월 둘째 주에 골드만삭스의 재무담당책임자(CFO)는 그들이 운영하는 대표 펀드(GEO)에서 약 30%에 해당하는 수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발표하며 이 손실을 (천재지변에 해당하는) 25-시그마(표준편차) 값의 사건으로 비유한 적이 있다. 일반인에게는 3-시그마(σ) 값 이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99.7% 된다는 것을 기억할지 모르지만 25-시그마 값은 엄두가 나지 않는 확률값이다. 발표 이후 25-시그마 값은 화제가 되며 여러 사람이 계산에 뛰어들었고, 10만년부터 수십억년에 한 번 일어날 사건의 값이라는 주장들이 나왔다. 이런 현상이 ‘꼬리 리스크’다.

위기는 같은 내용과 방식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이미 경험한 대부분 위기는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니가 꼬리 리스크 앞에 붙어 있는 ‘매우 빠른’의 수식어는 이번 위기의 차이를 보여준다. 위기는 지진처럼 사전에 전조 현상을 드러낸다. (재정 압박 상황에서) 대규모 감세를 발표하며 리즈 트러스를 영국 총리직에서 최단기에 사퇴시킨 국채 가격 폭락(=수익률 폭등) 사태가 그것이다. 국채 매도 급증 →국채 가격 폭락 →국채 담보가치 하락과 증거금 보충 →국채 매도 →국채 유동성 하락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하자 (긴축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국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채 시장도 긴장이 고조됐다. 국채 투자자들이 미국 재무부가 국채 매입에 나서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최근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이 연준 금리보다 낮아지며 미국채 시장이 진정됐지만 (10월 기준 미국채의 시장가격이 발행가격보다 2조1천억달러나 클 정도로) 미국채 시장은 기본적으로 공급 과잉 구조이기에 (인플레가 장기화하는 한) 미국채의 유동성 문제가 언제든 재부상할 수 있다. 최고 안전자산인 미국채 수익률이 다시 급등할 경우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미국채의 담보가치 하락과 미국채 가격의 추가 하락이라는 회오리가 만들어질 수 있고, 이는 나머지 위험 상품 가치들의 폭락으로 이어지며 자산 가치를 매우 빠르게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것이 카니의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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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의 자금 시장은 (10월 하순부터 국제 채권시장이 안정되며) 진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부 개입을 중단할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 지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은행을 내세워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부동산시장의 경착륙과 가계 및 기업의 부실이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기업 중심의 자금 지원은 도덕적 해이 문제를 낳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은행이 은행의 자금조달 지원을 넘어 2금융권까지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통화 긴축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지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12월7일 은행 등 금융회사들의 유동성 공급 능력 확대를 위해 (거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장외파생상품 매매 과정에서 담보로 받은 국채를 담보로 활용한 자금 조달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12월12일 기준 올해 국채 거래 규모는 1천916조원으로 민간채(=은행채+금융채+회사채+ABS) 거래 규모 1천534조원보다 382조원이나 많다. 따라서 (앞에서 소개한) 국채 가격이 하락할 경우 담보 증거금 보충과 국채 가격 추가 하락 등의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질 뿐 아니라 담보 고리를 확장함으로써 연쇄적인 부정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 칼럼들에서 소개했듯이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보다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새로운 위기를 계속 만들고 있다. 정부를 바라보고 살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앞가림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위험 상품 투자자들은 미국채 수익률과 더불어 국내 국고채 수익률의 추이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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