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도란도란... 낯설지만 끌리는 초대
‘안산 5개의 문화공간 6명의 호스트가 당신을 초대합니다. 상실, 쉼, 시작과 끝, 밥과 기억, 그림책, 비건, 필사, 기록, 예술, 환경과 회복을 키워드로 우리 만나요.’
낯선 기획자들의 낯선 초대장이 지난해의 어느 날 안산에서 공개됐다.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거나 만나서 그냥 밥 먹는 모임, 필사를 하거나 빵을 만드는 등 주제도 색깔도 달랐다. 일시적인 모임과 소수 정예의 인원을 모집하는 느슨하고도 불특정한 만남. 많은 이들은 평소 경험하고 싶었던 주제였거나 왠지 끌리는 이 낯선 초대에 기꺼이 참여하고 그 문화를 경험했다.
안산의 문화플랫폼 열무가 경기문화재단의 2022 경기권역 생활문화 교류 및 확산 연계 사업으로 진행한 ‘초대: 살롱 드 안산’의 이야기다. ‘초대: 살롱 드 안산’은 6명의 호스트들이 시민과 생활문화를 나누고 기획자들이 스스로 참여자들과 생활문화를 만들어 나가도록 바탕을 만들었다.
초겨울을 향해 달려가던 지난해 11월2일 안산시 상록구에 위치한 문화플랫폼 열무. 초대에 참여한 6명의 기획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호스트들이 모여 각자 진행하는 생활문화 사업에 대해 공유하고 잘된 점과 어려운 점, 앞으로의 방향, 또 이들이 겪은 생활문화를 서로 나누기 위해서다.
열무의 신지은 대표는 지역 사업을 하면서 만났던 젊은 예술가, 청년 활동가들과 만나 경기문화재단의 2022 경기권역 생활문화 교류 및 확산 연계 사업에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6명의 호스트들이 시민들과 나눌 주제를 하나씩 선정하게 하고, 참여자들을 모아 생활문화사업을 펼치도록 하는 플랫폼으로 역할했다. 저마다의 예술과 문화성을 가지고 안산에서 활동하던 호스트들은 각기 고민한 주제로 참여자를 초대했다.
아트벨라르떼 스튜디오는 완경이라는 새로운 출발점에 있는 사람들, 자신만의 랩소디를 만들고픈 이들을 위한 ‘경춘 씽어즈-나도 뮤지컬 배우다’를, 문화플랫폼 열무에선 쉼과 노래, 필사를 하는 ‘필사의 휴식’과 소중한 존재를 상실한 사람을 위한 ‘상실타래’를, 스스스튜디오는 시작이 두려운 사람과 반복된 루틴에 지친 사람을 위한 ‘시작하는 방’을, 청소년열정공간 99도씨는 밥 먹으며 수다 떨고 싶은 사람을 위한 ‘수수밥 살롱’을, 비건숲은 건강식을 지향하지만 달콤한 디저트를 끊지 못하는 사람 등을 위한 ‘그림책빵’을 열었다.
다른 분야인 만큼 공유되는 내용도, 생각도 달랐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처음 보는 다양한 소수들이 일시적인 모임에 나와 서로 마음을 다독이거나 공통된 문화를 나누었고 그 안에서 서로 좋은 에너지를 나눴다는 점이었다.
경춘씽어즈는 뮤지컬을 주제로 엄마들에게 해방구를 만들어 주고 삶에 또 다른 원동력을 주는 경험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곳에선 처음에 쭈뼛쭈뼛하던 엄마들이 ‘사실 고등학교 때 춤 좀 췄다’라고 고백을 하는가 하면, 그곳에서 자신을 발산했던 경험을 토대로 성당 성가대에 들어가기도 했다. 경춘씽어즈를 기획한 김혜영 대표는 “이게 문화예요? 하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맞다고 한다. 이것이 즐기는 문화이고 건전한 문화”라고 말했다. “생활문화는 고민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즐겨야 하는 것이죠. 인위적으로 기획할 필요가 없어요. 노는 문화를 건전하게 정착하고 널리 퍼뜨릴 필요가 있어요. 엄마가 스스로 행복하면 가정에도 행복이 찾아오지 않나요. 이런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해요. 정신을 행복하게 하는건 나라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른과 청소년, 남녀 다 같이 모여 밥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99도씨는 밥의 힘을 이야기했다. 김부일 99도씨 대표는 “수요일에 서로 수저와 숟가락만 놓고 만나 밥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는데, 청소년들이 자기 반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앞으로 음식 초대전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 연말에 각자 음식을 준비해와 먹으면서 함께 이야기를 하기로 했을 만큼, 일시적이었지만 그 안에서 서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고 말했다.
쉼과 노래, 필사를 진행한 ‘필사의 휴식’ 이유정 문화기획자는 필사의 휴식이란 모임이 일처럼 느껴졌지만, 그 시간이 쉬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참여자들이 오히려 나를 위해 많이 해주는 느낌이 들어 마음 한편에 불편함으로 남아 있었다. 다들 자기의 진짜 마음과 이야기할 때 서로 공감하고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열무는 지난해 12월9일 6명의 호스트가 그동안 각자의 주제로 나눈 생활문화를 교류하는 ‘초대 나눔날’ 행사를 열었다. 모임에서 나눴던 대화, 전시, 공연, 참여 활동 등을 기획자들이 각자의 부스에서 재현하도록 했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웠다. 여섯 명의 호스트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스스로 행복한’, ‘느슨하게 연결하고’, ‘배움이 되는’,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 등 삶과 일상에서 구체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놓고 이웃을 초대했다. 신지은 대표는 “기획자로 직접 참여하지 않고 플랫폼 역할을 하며 내가 한 게 없는데, 한 게 있었다. 문화예술기획자로 얻은 큰 행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신지은 문화플랫폼 열무 대표
Q 이곳 열무가 생활문화 플랫폼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가.
A 열무는 2022년 설립했다. 마을 안에서 새로운 소통 방법, 새로운 마을 활동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흔히 하는 교육 프로그램인 마을 만들기, 환경개선 등으론 새로운 마을 활동, 생활문화가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독립적인 개인이 제대로 선 채로 소통하고 연대해야 지속 가능할 수 있다고 느꼈다. 예술가, 문화기획자들이 자기 안에서 출발해 뭔가를 만들어내야 생활문화가 확산된다. 그래서 그동안 직접 기획자로 역할을 하다가 이번엔 매개자로, 플랫폼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Q 호스트에게 주제를 맡기고 그 이야기를 한데 아우른 게 신선하다.
A 이번 생활문화사업은 주최하는 기획자, 우리 호스트가 자기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 자기 문제여야 한다는 데서 출발했다. 일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생활문화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총 4명만 되면 시작할 수 있다. 거창하지 않아도, 내 문제를 끄집어내고 내 의지를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 그게 문화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업에서 호스트가 시민들과 함께 활동한 내용과 짚어낸 일상의 문제가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다.
Q 생활문화에 대한 정의가 다양한데.
A 삶의 문화, 일상의 문화다. ‘자기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 감정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표현하는가’ 이게 생활문화다. 혼자 할 수도 있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이 없는지 조금씩 만나서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프로그램과 다르고 동아리와도 다르다. 이번 사업명을 ‘초대’라고 정의한 것도 동아리와 다르단 걸 보여주고 실험해보자는 취지가 담겼다. 정자연기자·이나경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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