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주먹만 한 돌멩이 천지였다. 여태껏 ‘돌모루’라고 불리는 연유다.
▶화성시 석우동 64번지. 이곳의 옛 풍광이 그랬다. 아궁이에 생기는 그을음처럼 숲이 짙다는 뜻의 ‘먹실’이라는 언덕도 있었다. 지금의 반석산이다. ‘현랑개’라는 실개천도 흘렀다. 걸출한 인물이 많이 배출돼서다.
▶그랬던 마을이 어느 날 갑자기 을씨년스러워졌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면도날보다 더 날카로웠다. 중장비 굉음이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도랑 주변에 빼곡했던 자작나무 위로는 흙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았다. 하늘 위로 솔개 한 마리가 나지막하게 날고 있었다. 그런 창공으로 먹구름이 모여 들었다. 그렇게 그해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곳은 원래 일제강점기 민족 시인 홍사용 선생(1900~1947)의 고향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선생의 작품이다. 필자가 토목공사가 한창이던 이곳을 찾았던 때가 2003년 겨울이었으니 20년 전 얘기다. 강산이 두 차례 바뀌는 동안 이곳은 동탄신도시로 변모했다.
▶예당고교~화성동탄신도시 홍보관 1.5㎞는 ‘노작로(露雀路)’다. 시인의 호(露雀)에서 따왔다. 어른 걸음으로 20분 남짓 걸린다. 까치발을 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 등도 반갑다.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노작홍사용문학관도 들어섰다. 노작공원도 있다.
▶신도시는 세련됐다. 하지만 높이와 길이 등을 자로 잰 듯 반듯하게 맞춰 올라간 아파트나 빌딩 등이 눈에 거슬린다.
▶이를 담보로 잃어 버리거나 없어지거나 심지어 훼손되고 있는 소중한 것들도 많겠다. 외형적인 발전도 중요하지만 내적인 진화도 이에 못지않아야 한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는 까닭이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날렵한 공간에 문학이나 음악, 미술 등과 접목된 소프트웨어를 입힐 수 있다면 어떨까.” 이 거리에선 이 처럼 부질없는 상상이 차근차근 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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