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16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이틀 앞둔 이날 당시 유력한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5·18은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있는 역사이며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이 우리 국민 가슴에 활활 타오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머니투데이에 “(5·18이) 지금의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만드는 원동력”이라며 “역사의 교훈을 새겨 어떤 독재에도 분연히 맞서야 한다. 독재와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게 자유민주주의”라고 했다. 자유민주주의와 5·18정신을 강조하며 자유와 정의를 앞세워 윤 전 검찰총장은 그로부터 약 1년 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2023년 신년사를 통해 화두로 던진 윤석열 대통령의 교육개혁으로 새해 벽두부터 연일 시끄럽다. 특히 5·18민주화운동의 교육과정 삭제는 불과 1년 전 “5·18정신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숭고한 정신으로 국민 전체가 공유하는 가치로 떠받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며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前文)에 삽입하는 데 찬성한다”고까지 했던 대통령의 발언으로 볼 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역사의 교훈이며 국민 전체가 공유하는 가치라고 강조했던 발언대로라면 오히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5·18 교육을 강화하고 강조해야 하는 사안이 아닌가?
러닝메이트제 추진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러닝메이트제는 시·도지사 선거를 하면 공동 등록한 교육감이 자동으로 선출되는 제도로 사실상 시·도지사가 교육감을 지명하는 것으로 정당 공천을 금지하고 있는 기존 직선제를 완전히 뒤엎는 내용이다. 보수정권이 탄생할 때마다 나온 교육감 러닝메이트제 추진은 지난 MB정권에서도 시도했던 일로 교육의 정치화와 편 가르기만 두드러지는 모양새라는 지적이 강해 그동안 무산됐는데, 광역단체장이 12 대 5로 보수의 우세가 강했던 이번 선거에서조차 진보 교육감이 아홉 자리를 차지하다 보니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눈엣가시인 진보 교육감들을 배제하기 위해서라도 러닝메이트제를 화두로 던진 듯하다.
하지만 교육은 미래의 대한민국을 육성하는 ‘백년지대계’가 아닌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의 목표가 다를 수는 있지만 12년 동안 공교육 체제 안에서 배우고 학습해 나아가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정권이 최대 세 번 바뀔 수 있는데 이때마다 학습해 온 목적과 방향이 다르다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생각을 정권의 입맛대로 바꿔 강조하거나 축소해 가르친다면 자라나는 학생들이 사실에 입각한 올바른 역사관을 지닐 수 있겠는가. 하물며 헌법 전문에 삽입하는 것도 찬성한다던 윤석열 정부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후 거의 대부분의 세월 동안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명예회복이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금 이들에게 상처를 주려 하는가. 정치적 관점이 아닌 교육적 관점으로 본다면 오히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올바르게 기록하고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물론 교육부는 이번 사건이 해프닝이라고 땀 흘리며 변명하고 있지만 이주호 장관은 이미 MB정부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삭제를 지시한 바 있어 진의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금번 교육개혁에서 나온 5·18민주화운동, 성평등, 성소수자, 노동존중교육 등의 용어 삭제나 교육감 러닝메이트 같은 이 모든 상황이 정치적인 목적이기에 정치가 교육에 개입되는 현실이 현직 교육자로서 너무나 안타깝다. “교육의 진정한 목적 중의 하나는 부단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인간을 두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맨델 크레이턴은 말했다. 교육을 정치적으로 보고 득과 실을 판단하지 말고 역사적 상황과 사실 속에서 부단히 문제를 제기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 능동적 역사관과 가치관을 가지는 아이들을 길러내도록 교육만큼은 정치의 정쟁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라.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