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자살과 번개탄 금지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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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는 부문이 있다. 2003년부터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바로 ‘자살률’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21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26.0명이다. OECD 표준인구 기준으로 산출해도 23.6명으로 평균치(11.1명)의 2배 이상이다. 매년 1만3천여명이 세상을 등진다.

 

통계청이 집계한 자살 사망 수단을 보면 가스중독이 15.1%에 이른다. 가스중독 사망자는 2021년 2천22명으로, 이 가운데 번개탄을 피워 숨진 사람은 1천763명(87.2%)이다. 10여년 전보다 3배가량 증가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자살방지 대책의 하나로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 생산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안(2023~2027년)을 통해 자살률을 30% 줄이고 OECD 자살률 1등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현재 번개탄은 ‘자살 위해(危害) 물건’으로 분류, 자살 유발 등을 목적으로 유통하면 처벌된다.

 

자살을 위한 물건 관리를 강화하면 일부 예방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그래서 번개탄의 생산 금지를 고안해 낸 것인데, 이를 두고 후폭풍이 거세다. 온라인과 SNS에는 ‘한강 투신자가 많으니 한강 다리를 없애야 한다’ ‘철로 투신자가 많은데 철로도 다 폐쇄해야 한다’ ‘고층 아파트도 다 허물어야 한다’는 등의 조소와 냉소가 가득하다. 현실성 없는 황당한 대책이라며 ‘소가 웃을 일’이라고 비아냥거린다.

 

‘번개탄 생산 금지’ 방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하자 복지부는 “유해물질이 들어간 제품 생산만 금지하는 것으로, 인체 유해성이 낮은 친환경 번개탄을 보급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래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도 근본대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자살 수단이 되는 물건을 생산 금지하면 번개탄을 이용한 자살자는 줄어들지 몰라도 전체 자살자가 줄어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살 문제는 개인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문제다. 생명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공동체의 책임이 크다.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고통스러운 국민의 삶을 보살펴야 한다. 여기엔 여야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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