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부촌에서 벌어지던 고액·상습 체납 기류가 변하고 있다.
국세징수권의 소멸시효를 명분으로 ‘세금을 내지 않고 5년만 버티자’는 악성 납세자들이 이곳저곳에서 늘어나면서, 이젠 체납이 ‘부자 동네’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 경기도 체납국세 22조원…체납액·체납건수 1위 ‘안산’
지난해 3월 발표된 국세청의 ‘2021년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100억원에 육박하는 전국의 체납 누계 총액(99조8천607억원)의 22%(22조531억원)가 경기도에서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에서 징수 가능성이 없어 정리를 보류시킨 금액이 19조5천984억원에 달한다. 경기도내 체납된 국세 88.8%가 ‘징수하기 어렵다고 판단된 돈’이라는 의미다.
체납 금액이 높은 지역을 세무서별로 보면 도내에서는 안산세무서가 2조2천798억원으로 가장 높았다. 강남세무서와 서초세무서에 이은 전국 3위 수준이다. 뒤이어 용인세무서(2조632억원), 평택세무서(1조9천962억원), 광주세무서(1조4천902억원) 등이 차지했다.
또 같은 기간(2021년도 기준) 경기지역 세무서별 체납 건수는 ▲안산세무서 9만5천32건 ▲평택세무서 9만960건 ▲광주세무서 8만1천590건 ▲시흥세무서 7만8천541건 ▲화성세무서 7만3천108건 순으로 많았다.
즉 안산은 체납 건수가 많은 만큼 체납 금액도 높았고, 용인은 체납 건수가 적은 반면 1인당 체납 금액이 높았다고 풀이된다. 시흥이나 화성은 체납 건수가 많음에도 체납 금액은 비교적 낮은 상황으로 분석할 수 있다.
아울러 정리보류 금액이 높은 지역도 안산(2조160억원), 용인(1조8천894억원), 평택(1조7천759억원) 순이었으며, 정리보류 건수가 많은 지역도 안산(5만4천241건), 평택(4만6천844건), 시흥(4만4천923건) 순으로 대개 비슷하게 나타났다.
■ 돈 없어서 못 내?…“소멸시효까지 버틸뿐”
과거엔 ‘강남·서초’처럼 전형적인 부촌의 체납 금액이 높았는데 이제 도내에서는 양상이 달라지는 모습이다.
2022년 경기도 시·군별 재정자립도(예산 기준)를 토대로 본다면 현재 성남시(62.2%), 화성시(58.6%), 용인시(48.7%), 하남시(47.6%), 이천시(44.6%) 등의 재정 여건이 튼튼한 편인데, 체납 금액이 높은 지역이 이 재정자립도와는 같지 않아서다.
이처럼 체납 기류가 변하는 이유는 지역민들이 ‘돈이 없어서’ 혹은 ‘돈이 많은데 아끼고 싶어서’ 등의 핑계와는 무관하다. 국세 당국의 시선에서 대부분의 체납자가 세금을 안 내는 이유는 국세징수권에 존재하는 ‘소멸시효’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국세는 현행법에 따라 5억원 미만이면 5년, 5억원 이상이면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되는 상황이다. 이에 “5년만 버티자”며 넘어가는 체납자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체납액이 ‘억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1천만원 이하의 소액체납건 징수율을 높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얼마 안 돼 금방 갚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체납자들이 많아서다.
국세청은 납부고지, 독촉, 교부청구, 압류처분 등을 통해 징수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해당 기간 동안 사망한 자나 재산보다 체납액이 많아 상속을 포기한 자 등에 대해선 결국 체납액을 징수하지 못한다. 해마다 체납 분야 정원을 증원하고 조직을 개편해 지방청 체납 추적과 인력을 확대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이 같은 이유에 있다.
■ 동고양·포천·화성 체납추적팀 확대…인력 확충은 ‘남은 숙제’
지난해 국세청은 전국 지방청에 체납추적관리팀을 신설했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는 각 지역 세무서에 지방청과 동일한 수준의 체납추적 업무만 전담하는 체납추적전담반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체납추적전담반은 지난해 시범적으로 전국 8개 세무서에서 운영된 바 있다.
실제로 올해 경기권의 경우 동고양·포천세무서의 체납추적팀이 1개에서 2개로, 화성세무서의 체납추적팀이 2개에서 3개로 늘어났다. 이들 팀 안에 악성 체납자의 실거주지 등에 대한 현장추적 및 수색업무를 담당하는 체납추적전담반이 추가 배치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숙제는 남아있다.
세무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단기간에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데다가, 체납자들을 수색하는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선 지자체와의 협조가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특히 납세를 회피하는 방식이 고도화 하고 있어 전문적인 세무 인력의 보강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내 한 세무서 관계자는 “체납추적전담반 내 인력이 단순히 수적으로 증가할 필요도 있지만 전문적 능력을 키운 질적 증가도 필요하다”며 “전체적으로 양질의 세무 인력이 늘어나야 하고 실거주지 파악 등을 위해선 지자체와의 원활한 협조도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본적으로는 ‘브로커를 통해 세금을 안 내는 방법을 찾자’는 인식을 지우고, 국세를 적재적시에 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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