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종교] 동정 부부의 사랑 이야기

image
김의태 수원가톨릭대 교회법 교수

서양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가 있었다면 동양에선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 역사상 매우 특별한 커플이 있었으니 이름 하여 ‘동정 부부’라 부르는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부부의 이야기다.

 

사실 ‘동정+부부’라는 서로 모순되는 두 마디가 이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 수도자처럼 하늘나라를 위해 주님께 오롯이 몸을 바치기로 한 젊은이들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부부가 됐다. 당시 사회적 관습에 따라 결혼적령기에 이른 남녀가 독신으로 지내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의 형식을 거쳤다.

 

한 지붕 밑에서 이 젊은 남녀가 4년 동안을 함께 살면서도 두 사람은 처음부터 하느님과 상대방에게 약속한 동정을 지켜냈다. 그리고 둘은 두어 달 사이로 나란히 순교했다. 그래서 누구는 이들을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백합”이라고, 누구는 “한국 순교사의 가장 찬란한 진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진짜 가능한 일인가? 이순이 루갈다는 감옥에서 곧 맞이할 죽음 앞에 자신의 속 이야기를 어머니께 써 보낸다. 이후 이 편지는 박해 시대 때 신앙인들이 혹독한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가장 많이 읽은 글이 됐고, 신앙의 후손들이 이 글을 끊임없이 필사하고 널리 전한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석처럼 남게 됐다.

 

“제가 여기로 온 후, 평소에 마음에 두고 걱정하던 일을 이루었습니다. 9월에 와서 10월에 우리 두 사람이(동정을 지키기로) 발원 맹세하고 4년 동안을 실제로 남매처럼 지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대략 10번이나 심한 유혹을 당하여 (서약을 지키기가)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피를 흘려 이루신 공로의 힘에 의지하여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 일에 관해서 마음을 쓰실 것 같아 이렇게 말씀드리니, 저 자신을 대하시듯 이 글을 반갑게 받아주시기 바랍니다.”(동정 부부 순교자 이순이 루갈다 옥중편지)

 

이들은 당시 서학을 통해 천주교를 알게 됐고, 신 때문에 양반이든 노비든 모두가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접한다. 태생부터 신분이 정해진 사회, 양반과 노비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리와 불평등 속에서 이러한 가르침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신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인간 상호 간의 사랑과 존중이라는 귀중한 모범도 발견할 수 있다. 상대방이 가고자 하는 길, 그리고 그가 신께 드린 서약을 존중하고 그것을 지켜 주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이겨낸다. 그들이 보여준 사랑은 자신을 희생할 때 가장 분명히 나타난다. 자신을 태우며 세상과 이웃에 빛이 돼주는 초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들은 가슴속 깊이 이 성경 구절을 새기며 살지 않았을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1요한 3·16).”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