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에 처방 가능’ 마약류 식욕억제제에 빠진 경기도민

18일 오전 경기지역의 한 병원에서 환자들이 식욕억제제 처방전을 발급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오민주기자

 

“표준체중은 식욕억제제를 먹을 필요가 없지만 원하시면 처방전은 써드리죠.”

 

18일 오전 10시께 방문한 다이어트의 성지로 알려진 구리소재 A 의원. 좁은 병원 내부는 식욕억제제를 처방받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달려온 20여명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접수하고 기다리는 중에도 쉴 새 없이 식욕억제제 처방 문의 전화가 걸려 왔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키와 몸무게를 잰 후 간단한 안내와 주의사항을 듣고 진료를 기다렸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는 “살 더 빼고 싶죠?”,“불면증 약은 필요 없어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몇 마디 질문을 끝으로 진료 1분 만에 식욕억제제를 손에 넣었다.

 

같은 날 수원에 있는 B 의원의 식욕억제제 처방은 더 간단했다. 식욕억제제 처방전을 발급하러 왔다고 하자 잠시 기다리라는 안내 후 바로 의사의 진료실로 들어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손쉽게 한 달간 복용할 수 있는 식욕억제제 처방전을 발급받았다.

 

마약류 식욕억제제의 과다한 처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을 통해 식품의약안전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2년 반(2020년~2022년 6월) 동안 처방된 마약류 식욕억제제가 무려 6억정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한 해 동안 처방된 식욕억제제는 2억4천495만정, 환자 수는 128만명으로 집계됐다. 평균적으로 환자 1명이 191알의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셈이다.

 

2021년 기준 경기지역에서 식욕억제제를 가장 많이 처방한 구리소재 의원의 경우 한 해 동안 환자 1만8천670명에게 615만3천732정의 식욕억제제를 처방했다. 하루 평균 1만6천859정의 식욕억제제를 처방한 것이다. 또한 처방전 1건당 평균 처방량이 가장 많았던 평택에 있는 한 의원은 한 번 처방전을 발급할 때마다 142정의 식욕억제제를 처방한 것으로 드러났다.

 

식품의약안전처의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 사용 기준이 4주 이내의 단기 처방, 1일 권장 투여량은 1~3정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심경원 이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식욕억제제를 복용하게 되면 뇌에서 배고픔을 덜 느끼게 하도록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증가시키다 보니, 의존성과 내성을 유발할 수 있다”며 “특히 일부 식욕억제제는 임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오랜 기간 복용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초래될지 알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마약류 처방전 발급 시 환자의 투약내역을 의무적으로 확인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식욕억제제 등의 약물을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4일 제주시에서 20대 운전자가 식욕억제제를 과다하게 복용해 환각 상태로 차량 6대를 잇달아 들이받는 사고를 내 검찰에 송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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