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기도에서 발생한 사망 근로자 수가 500명을 돌파했다. 전국에서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비중이다. 사고 사망 만인율 역시 0.499‰로 전국 평균을 훌쩍 웃도는 수준이다. 이에 경기일보는 경기도내 일터에서의 안전문화 정착과 확산을 위해 연중기획기사를 보도, 도내에서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방법과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정부가 그간 위험하고 복잡했던 ‘위험성 평가’를 개편하며, 산업현장의 재해를 줄이기 위해 추진 중인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출발을 알렸다.
이에 새롭게 바뀐 위험성 평가에 따라 도입되는 체크리스트법, 핵심요인 기술법 등 다양한 평가방법들이 실제 현장에선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자세히 뜯어본다.
■어렵고 복잡했던 ‘위험성 평가’…쉽고 단순해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는 2026년까지 사망사고 만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현장에 구축하겠다는 의도였다. 이에 정부는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의 시작점 중 하나로 위험성 평가 개편으로 삼았다.
지난 2014년 도입된 위험성 평가는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한 후, 이로 인한 부상·질병 발생 빈도와 강도를 집계해 감소 대책을 수립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순서상으로는 사전 준비→유해·위험요인 파악→위험성 추정→위험성 결정 →위험성 감소대책 수립·실행 등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그동안 위험성 평가는 위험요인을 계량적으로 산출해야만 해 복잡하고 어려웠던 데다, 중소사업장에선 실시하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지난 2019년 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작업환경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경기도내 기업 3만7천161곳 중 최초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 곳은 1만3천33곳(35.9%)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정기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 적 없다’고 응답한 기업들도 2만4천725곳(66.5%)에 육박했다.
이에 정부는 자기규율 예방체계의 일환으로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고시)’을 개정했고, 지난 22일부터는 각 사업장에선 개편된 위험성 평가가 적용되고 있다. 개정된 위험성 평가를 관통하는 핵심은 ‘단순함’이다. 특히, 근로자의 사망·부상·질병의 빈도와 강도를 계량하도록 지시하는 문구를 삭제하고, 위험요인 파악과 개선 대책 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 '빈도강도법'부터 ‘OPS’까지…개편된 평가 방법 어떻게 사용하나
그렇다면, 단순화된 ‘위험성 평가’는 실제 사업장에서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까.
새로운 위험성 평가를 통해 정부가 제시한 평가 방법은 빈도·강도법, 체크리스트법, 위험성 수준 3단계 판단법, 핵심요인 기술법 등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사업주는 사업장 규모와 특성을 고려해 이 중 한 가지 이상을 선정해 위험성 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
우선, 빈도·강도법에서 가장 큰 변화는 재해가 일어나는 빈도와 강도를 반드시 수치화해 계산하는 ‘추정’ 단계가 삭제된 것이다. 기존 평가방법 하에선 책임자와 근로자는 직관적으로 어떤 곳이 위험한지 알아도 규정을 지키기 위해 통계를 찾아 빈도와 강도를 계산해야 했다. 하지만 개편된 위험성 평가에선 이를 과감히 삭제했다.
이외에도 체크리스트법이나 핵심요인 기술법 등 다양한 평가 방법도 사용할 수 있도록 열어뒀다.
‘체크리스트법’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사업장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마련된 현재 조치가 적정한지를 ‘O’ 또는 ‘X’로 표시하는 방법이다. 일례로, ‘이 프레스는 위험한가’라는 질문에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O’를, 그렇지 않으면 ‘X’로 체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목록에 제시된 유해·위험요인의 위험성과 현재 조치사항을 종합해, 그 위험성이 허용 가능한 수준의 위험인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핵심요인 기술법’(OPS·One Point Sheet)의 경우, 국제노동기구(ILO) 등에서 중소사업장을 위해 안내하는 방법으로 단계적으로 핵심 질문에 답변하는 형태로 실시된다. 예를 들어, ‘유해·위험요인은 무엇인지?’, ‘현재 시행 중인 안전조치와 추가적으로 필요한 조치는?’ 등의 핵심 질문에 응답을 하면서 사업장의 위험 요인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이와 함께 위험성 결정 단계 시 위험성의 수준을 ‘상·중·하’ 또는 ‘저·중·고’ 등으로 간략히 구분한 ‘위험성 수준 3단계 판단법’도 사용할 수 있다.
■간소화된 평가 시기…근로자 참여도 필수
또 개편된 위험성 평가에서 주목할 만한 점 중 하나는 간소화된 평가 시기다.
기존에는 최초 평가 이후 수시 평가와 정기 평가를 진행해야 했지만, 정부는 수시 평가와 정기 평가를 없애고 주 또는 월 단위로 상시평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규칙적으로 상시적인 위험성 평가를 하면, 근로 감독 시 정기 평가와 수시 평가를 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근로자에 참여를 보장한 내용에도 기대감이 쏠리고 있다. 위험성 평가의 주체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지만, 효과적으로 사업장의 위험요인을 걸러내기 위해선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근로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위험성 평가의 사실상 마지막 단계인 위험요인 감소 대책 이행 시에만 근로자 참여가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개정 고시에 따라 근로자들은 위험성 평가 전 과정에서 참여를 보장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위험성 평가 결과 전반을 근로자에게 알리고 작업 전 안전회의(TBM·Tool Box Meeting)를 통해 근로자들이 항상 위험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신설됐다.
이같이 개편된 위험성 평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얼마나 적용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이근원 아주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는 “개편 전 위험성 평가는 형식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면서도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위해 새롭게 바뀐 위험성 평가가 정착되기 위해선 정부에서 중소규모 사업장을 위한 컨설턴트 양성, 예산 지원도 적극적으로 실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고시 시행에 맞춰 다음 달 말까지 ‘위험성 평가 집중 확산기간’을 운영 중이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개정 위험성 평가 방법 안내서와 사례집을 배포할 예정이며, 안전보건공단은 온라인 위험성 평가 지원시스템에 개정 고시안을 적용해 시스템 상으로 새 위험성 평가가 적용될 준비를 마쳤다.
■추락·끼임·부딪힘 3대 사망 사고…두 팔 걷고 나선 안전보건공단
전체 산업재해 사망 사고 중 추락, 끼임, 부딪힘으로 인한 사망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가운데 안전보건공단이 이러한 사망 사고 감축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제시하며 두 팔 걷고 나서고 있다.
23일 안전보건공단 등에 따르면 산업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고 유형은 ▲떨어짐 ▲끼임 ▲부딪힘이다. 사망 재해의 발생 형태는 크게 떨어짐, 끼임, 부딪힘, 물체에 맞음, 깔림·뒤집힘, 기타 등으로 구분되는데, 여기서 정부는 가장 많이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3가지를 3대 사망 사고 유형이라 규정했다. 실제로, 지난해 발생한 전체 사망재해 중 이 3대 사망 사고의 비중은 67.9%에 달했다.
특히 정부는 3대 사고유형에 8대 위험요인인 ▲비계 ▲지붕 ▲사다리 ▲고소작업대 ▲방호장치 ▲LOTO(Lock Out, Tag Out) ▲혼재작업 ▲충돌방지장치 등을 점검대상으로 확대해 기본 안전수칙 준수 및 산재 예방에 나서고 있다.
건설업에서 주로 발생하는 추락 사고는 비계·지붕·사다리·고소작업대 등에서 작업을 하다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제조업에서 빈번한 끼임 사고는 방호장치를 하지 않거나 점검 중 작업을 멈추지 않아 불의의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혼재된 작업을 하거나 충돌방지장치를 마련해 놓지 않아 부딪힘으로 인한 사망 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안전보건공단에선 이 같은 ‘3대 사고 8대 위험요인’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먼저, 안전보건공단은 ‘사고사망 등 고위험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사업장 당 최대 3천만원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상시 근로자 50명 미만인 사업장의 사업주나 업종별 평균매출액이 ‘소기업 규모 기준’ 이하인 기업의 사업주 등이 신청할 수 있다. 주요 지원설비로는 지게차·건설기계 충돌예방 설비, 화재폭발 예방설비, 고소작업대, 끼임 방지시설 등이 있다.
또 안전보건공단은 건설업 클린사업의 일환으로 ‘추락방지용 안전시설 지원 사업’도 실시 중이다. 이는 공사금액이 50억원 미만의 안전시설 설치 소규모 건설현장 등에 대해 건설현장 당 최대 3천만원 상당의 설비 구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안전난간이나 가설 계단 등 시스템 비계나 낙하물방지망, 추락방호망 등 안전방망 지원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안전보건공단은 자금여력이 부족한 사업장의 안전시설 개선을 위해 저리의 융자금을 지원하는 ‘산업재해예방시설 융자지원’, 중소사업장을 대상으로 미인증 이동식 크레인 등 위험기계 교체 지원과 제조업의 노후 위험공정을 개선 지원하는 재정지원 사업인 ‘안전투자혁신 사업’ 등도 실시 중이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산업현장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고가 추락, 끼임, 부딪힘이다. 공단에선 이 같은 사고를 줄이기 위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향후 다양한 사업들을 마련해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해당 기사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안전문화 확산 공모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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