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자 유물 태부족… 인천 송도 무늬만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전체 소장품 543점 중 32% 불과
용산 국립한글박물관과 판박이
콘텐츠 부실… 예산액 확충 시급

오는 23일 개관을 앞둔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세계 문자 관련 소장품이 30%에 그치는 등 콘텐츠가 부실, 세계 문자 소장품 구입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용준기자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 들어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정작 전 세계의 문자 관련 소장품은 30%에 그치는 등 콘텐츠가 부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실상 현재의 소장품으로는 국립한글박물관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만큼, 정부가 예산을 확충해 세계 문자 관련 소장품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1일 더불어민주당 임종성 국회의원(광주을)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구입품 목록을 분석한 결과, 박물관에 전시가 이뤄질 소장품 543점 중 세계 문자와 관련한 소장품은 176점(32.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확보한 세계 문자 관련 소장품으로는 약 20억원을 들여 사들인 ‘구텐베르크 42행 성서 분책’이 가장 고가다. 독일 구텐베르크가 발생한 유럽 최초의 금속인쇄물 초판이다. 또 기원전 1750년 수메르 쐐기 문자로 노아의 방주 모티브인 설화가 담긴 10억원 규모의 ‘원형 배 토판’ 등도 있다. 나머지 174점은 루터 구약성서나 로마 대리석 유골함 등 유럽권 소장품에 쏠려있다.

 

반면 나머지 국립세계문자박물관 367점은 모두 한글 및 한자 관련 소장품이다. 조선 세종대왕 때 인쇄한 ‘자치통감’이나 1961년 재건국민운동본부가 발간한 문맹자 교육용 책인 ‘한글공부’, 돌에 새긴 한자인 ‘석고문 탁본’ 10점 등이다. 만주어 사전을 증보한 ‘어제증정청문감’ 49점, 개화사상가 오경석 친필원고인 ‘천죽재고장금석서화연기’ 등의 불교서와 시인의 작품 등도 있다.

 

오는 23일 개관을 앞둔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노아의 방주 모티브인 근동 설화의 배 형태·규격을 묘사한 ‘원형 배 토판’ 1점이 전시할 예정이다. 인천시 제공

 

특히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당초 ‘세계 유수 문자 등과 비교 전시해 한글이 가진 의미를 살린다’는 건립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세계 유수 문자의 소장품이 적고, 되레 지난 2014년 문을 연 서울 용산의 국립한글박물관 소장품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016년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에서도 ‘국립한글박물관과 ‘한글의 문자 가치를 알린다’는 전시 기능이 겹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외국의 고대·현대 문자 소장품의 집중적인 확보는 물론 차별화 전시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문체부가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사업비 908억원 중 유물 구입비로 고작 95억원만 투입, 이 같은 세계 문자 관련 소장품이 부실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박물관은 소장품 등 콘텐츠가 좋아야 하는데, 정작 사업비의 대부분이 건축비에 들어간 탓이다.

 

오세덕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는 “글로벌 도시인 인천에 맞는 세계 문자 소장품이 풍부해야 한다”며 “현재 상태면 국립세계문자박물관만의 특수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문체부가 추가로 예산을 확보해 유럽 이외의 더 많은 세계문자 소장품 확보에 나서 본연의 박물관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아직 세계문자 중 수집하지 못한 자료가 있지만, 올해 20억원의 추가 예산으로 더 많은 소장품을 확보해 박물관의 차별성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어 “소장품 확보가 어려운 부분은 스마트 플랫폼을 구축해 전시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문체부는 2019년부터 송도 센트럴파크 인근 1만9천418㎡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이나 문자의 미래를 나타내는 작품 등을 전시하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건립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박물관은 오는 23일 개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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