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해사법원, 유치보단 설치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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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청운대 교수

해사법원은 선박 충돌 사고나 해상보험·선원법 관련 사건 등 해사사건을 전담해 처리하는 전문법원이다. 그러나 세계 선박 건조량 1위, 지배선대(선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모든 선박의 규모를 나타내는 지표) 세계 5위, 세계 무역 7위의 조선·해운 강국인 한국엔 정작 해사법원이 없다.

 

국내 해상사건은 서울고법 등 4곳의 민사법원 내 해사사건 전담재판부에서 다뤄지고 있지만 전문지식과 사건처리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사건처리 기간이 몇 년씩 지연되기 일쑤다.

 

때문에 국내 선사들 상당수는 분쟁이 생기면 영국이나 싱가포르 등 해외에 있는 전문중재소나 해사법원에 의존하고 있다. 해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비용은 연간 약 5천억원에 달한다. 통상 1건당 소송비용이 10억여원인 것을 감안하면 연간 500여건의 해사사건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조계에서도 해사법원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해사법원 신설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회에서도 인천, 부산 지역 의원들 중심으로 법안이 발의되는 등 지역 간 유치경쟁이 치열하다.

 

인천은 서비스 수요자와 국제공항의 접근성, 중국과의 교역량에 비춰 인천이 해사법원의 최적지라고 강조한다.

 

소송당사자가 될 국내 선주업체 210여개사 가운데 무려 70%에 이르는 160여개사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 또 영국처럼 해사법원이 추후 항공사건까지 다룰 수도 있고 재판, 중재 당사자가 주로 외국인임을 고려할 때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공항이 있는 인천이 적지라는 주장이다. 특히 중국과의 무역량이 늘어남에 따라 해양 분쟁이 증가하고 있는데 인천은 대중국 교역물량의 60%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부산은 국가균형발전, 유리한 입지조건, 해양산업과의 연계성을 들며 해사법원 유치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부산에 해사법원을 설치하는 것이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신에 부합하고, 고등법원이 있는 5개 도시 중 유일한 해양도시이자 한국해양수산연수원, 한국환경개발교육원 등 해양 교육기관을 통한 전문인력 확보에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해양 관련 유관기관이 포진해 있어 원활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아시아태평양중재센터가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해사법원 신설이 확정되기도 전에 인천과 부산의 유치 경쟁이 과열하면서 논의 자체가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해사 사법서비스 수준 향상은 물론 국내 해운산업을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초석인 해사법원. 위치보다는 설치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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