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가훈(家訓)은 좀 독특했다. 바로 ‘잠은 집에서’였다.
어릴 적엔 ‘뭐 이런 가훈이 다 있냐’라고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그 가훈을 주신 부모님의 연세를 넘어선 지금, 이 가훈이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의(衣), 식(食), 주(住). 이는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본조건들이다. 일반적으로 의식주에서 ‘주’를 집(宙)으로 알고 있지만 본래 한자어는 ‘거하다’, ‘살다’라는 뜻이다. 물론 안전하고 편안하게 거하고 살기 위해 좋은 집은 삶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십수년 전에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은 적이 있었다.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보장된 저녁, 즉 편안한 안식은 어려운 현실이었고 작금에도 많은 이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며 살아간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에는 집 나간 둘째 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아들은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 있음에도 자신의 몫(유산)을 요구하는 뻔뻔한 아들이다. 그러고는 그 재산을 다른 나라에서 자신의 만족을 위해 탕진해 버리고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신세가 바닥을 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한 가지 결단을 내린다.
바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를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종으로 여겨 달라고 한다.
오매불망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들을 품에 안고 입을 맞추고 집으로 온 아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다.
‘탕자의 비유’라고 말하는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이 돌아갈 집이 있었고, 아들을 맞아준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의 끝에는 반전의 요소가 있다. 그동안 아버지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일한 큰아들이 그동안 쌓인 불만을 쏟아내는 장면이다.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다가온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무색하게 명절이 되면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또 명절에 외로움과 소외감만 더하는 이들도 주변에 있다. 예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라는 질문(마태복음 22장)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단언하셨다. 즉, 사랑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정신이라는 것이다.
올 추석에는 많은 이들이 행복하기를 소망한다. 집 나갔던 아들을 너그러이 받아준 아버지의 사랑이 있기를. 큰아들 같은 반전의 인물이 되지 않기를. 집으로 향하는 길이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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