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 앞에서 오만했던 인간의 행위를 반성하며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휴지장처럼 구겨진 튀르키예의 도시, 삶의 터전을 쓰레기더미로 파괴시킨 시리아의 지진, 도시를 형체도 없이 날려버린 리비아의 대홍수 등등. 인간은 자연을 향해서는 파괴자이며 정복자이기도 했다. 마르지 않을 샘으로 여겼기에 지구를 과잉소비했으며,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해 결국 그 아우성이 지금 우리에게 기후변화의 재앙이 아닐까.
뒤늦은 반성으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말한다. 그 의미에서처럼 미래의 후손들에게 되돌려줘야 할 살 만한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 지금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반복되는 지구촌의 재앙을 접하며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만신창이의 도시에서 자식을 낳고 그 아이들에게 책임지고 살아내라고 하는 것이 두려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유행처럼 도시재생이란 말이 쓰나미처럼 스쳐 지나갔다. 도시재생이란 말은 도시의 쇠퇴를 경험한 도시들이 풀어내야 할 과제이기에 정치적이거나 스쳐 지나가는 유행어가 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집 지을 땅이 부족해지니 도시재생 사업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게다가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지난 정부의 핵심 정책이었으니 평탄하게 지속되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 같아졌다고나 할까.
지금 구도심에서는 새로운 기능을 더해 쓰던 것을 유지하려는 사람들과, 새로운 신도시로 거듭나려는 재개발사업이 충돌하고 있다. 큰 의미에서는 둘 다 도시재생일 것이며, 옳고그름의 문제보다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당연히 시대적인 상황이 반영돼 풀어내야 할 과제임에 틀림이 없지만, 너무 과밀해지는 아파트 중심의 도시가 앞으로 몇십 년 후에도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우리 것이 아닌 후손들에게 빌려 쓰는 것이므로, 온전하게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에게 닥친 수많은 도시적 과제를 경제적 가치에만 편중되지 않도록 풀어내는 일이다. 좀 늦더라도 다양성이 존중되는 도시로서 일시적인 유행처럼 도시가 마련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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