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의 유별났던 무더위 탓인지 올가을의 창공과 햇살과 바람은 어느 해보다 섬세하게 오감을 자극한다. 그 뜨거웠던 8월에 만난 ‘소시민의 칠거지악’. 이 연극은 제3회 소극장 공유 페스티벌 ‘연극·생각을 잇다’에 참여한 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의 작품이다. ‘소시민의 칠거지악’은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작곡가 쿠르트 바일이 공동 작업한 발레극이다. 임형진 연출은 ‘게으름, 자만, 분노, 식탐, 호색, 탐욕, 시기심’이라는 일곱 가지 죄악을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와 연결해 포스트드라마적 연극으로 각색했다. 사실 브레히트는 문학을 넘어 영화나 라디오의 텍스트를 쓴 전방위적 예술가였다. 서사뿐 아니라 형식의 독창적 변주를 보여준 ‘소시민의 칠거지악’에서도 시대를 초월한 브레히트 미학을 접할 수 있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 캄캄한 무대 위 밝은 원통의 설치물부터 낯설다. ‘저게 뭘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 두 명의 안나, 아니 ‘한 명의 분열된 두 자아(안나 1과 안나 2)’가 등장한다. 그녀들은 마치 다른 두 사람인 듯 스스로 타자화하며 위로하고 다투고 울부짖는다. 극은 무대 벽면에 걸린 일곱 개의 칠판에 칠거지악의 도시명이 하나씩 적히며 진행된다.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독특한 사운드가 무채색의 평면적인 무대를 일곱 개의 도시로 풍성하게 전경화한다. 안나 2는 도시를 이동하며 점차 돈을 우상화하고, 안나의 어머니는 원통 위에 그녀가 번 돈을 쌓아간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원통의 빛은 사라지고 돈더미만 허공에 남으면서 브레히트의 작품답게 자본주의 시대 돈의 유사전능성을 성찰하게 한다.
다시 분열된 두 자아인 안나 1과 안나 2를 호명해보자. 문경희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 안나 1’은 이성적·현실적인 자아이며, 오다애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 안나 2’는 자본주의 구조에 침잠되면서 순수성을 상실해가는 자아다. 하얀 셔츠와 검은 바지를 동일하게 착용한 단발머리의 두 배우는 때로는 분열된 자아들로 충돌하고 때로는 서로 다독인다. 한 명의 안나로부터 분열된 자아들, 그야말로 무대의 사건과 배우의 연기가 낯설게 느껴지는 브레히트 서사극의 현대식 작법이다.
욕망과 도덕의 이중적 잣대 아래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내려는 안나의 두 자아, 즉 안나 1과 안나 2는 현대인의 다중 자아와 다를 바 없다. 우리 모두에게도 개인의 본능에 충실한 자아가 있는가 하면 사회적 신분에 적응하려는 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두 자아가 사회에 속한 개인으로서의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얼핏 극 중의 안나 1과 안나 2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자아는 안나라는 한 인물의 생을 이끌어가는 역동적 자아들이다. 그래서 안나 1도, 안나 2도 모두 소중하다.
안나의 자아들을 마주한 후 나의 자아들을 들여다본다. 과연 나의 다중 자아는 조화롭게 소통하고 있는가? 나의 자아들은 소시민의 칠거지악으로 묘사된 ‘게으름, 자만, 분노, 식탐, 호색, 탐욕, 시기심’을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가?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욕망과 사회적 규범을 끌어안은 우리의 자아들은 오늘도 분투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를 잘 ‘살아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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