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농부 김수영 “학생들에게 최고의 밥 선사하는 뿌듯함 커”

고양시쌀연구회 영농조합법인 김수영 대표가 직접 재배하고 도정, 포장한 가와지쌀을 품에 안고 있다. 신진욱기자

 

킨텍스 맞은편으로 난 논밭 사이 좁은 길을 한참 달려 고양시쌀연구회 영농조합법인에 도착했다. 벼 1천300t을 저장할 수 있는 대형 저장고(사일로)가 멀리서부터 길 안내를 했다.

 

김수영 대표(63)는 지게차를 운전해 1t은 돼 보이는 쌀 포대를 옮기고 있었다. 고양에서 나고 자란 그는 LG맨이었다. 7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농부가 됐다.

 

“아버지 건강이 악화 데다 직장생활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1998년부터 조금씩 쌀농사를 짓기 시작했죠. 2002년 고양시쌀 연구회에 가입하고 출자하면서 진짜 농부가 됐습니다.”

 

직장인에서 농부로 변신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중고등학교 때는 농사일 돕는 게 정말 싫었어요. 농사는 절대 안 짓겠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지금은 농부로 사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일을 한 만큼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니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자연 속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맞더라고요. 천상 농사꾼인 모양입니다.”

 

고양시쌀연구회는 2002년 12월에 설립됐다. 고양시에서 쌀농사를 짓는 12명이 공동 출자해 만들었다. 벼를 수매해 도정, 포장, 판매한다. 최신식 대형 쌀 공장이다. 1년에 약 1천200t을 수매하는데 가와지쌀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가와지쌀은 1991년 일산 신도시 개발 때 고양 가와지 마을에서 출토된 열두 톨의 볍씨에서 탄생했다. 그 볍씨는 5천20년 전 한반도 최초 재배벼로 밝혀졌다. 고양시는 가와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 대표는 가와지쌀 농사도 짓는다. 13만㎡(4만평) 규모다.

 

가와지쌀에 집중하는 이유를 물었다.

 

“소비자가 원하는 밥맛을 내기 때문이죠. 찹쌀이 섞인 듯한 반찰개 쌀이 요즘 트렌드입니다. 가와지쌀은 남은 밥을 냉장고에 보관했다 먹을 때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금방 한 밥맛이 납니다.”

 

가와지쌀 10kg을 온라인에서 4만6천원에 판매한다. 다른 품종에 비해 비싸지만 재구매율이 월등히 높다.

 

김수영 대표가 도정돼 나온 가와지쌀을 살펴보고 있다. 신진욱기자

 

학생들이 급식에 나오는 가와지쌀밥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야기할 때 그의 목소리가 절로 커졌다.

 

“학교 영양사나 조리원분들이 한결같이 가와지쌀로 급식을 하면 잔반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밥이 맛있으니 반찬도 다 먹게 됩니다. 고양시 학생들에게 최고의 밥을 선사하는 뿌듯함이 크죠. 이만큼 의미 있는 일도 없지 않을까요?”

 

가와지쌀은 포대당 가격이 비싸지만 선호도 조사에서 고양시 170개 학교 중 98%가 선택할 만큼 인기다.

 

다 좋은 수는 없다. 맛이 좋고 판매가가 높은 반면 재배가 까다롭고 생산성이 낮다.

 

“가와지쌀은 육묘 과정이 까다롭고 생산성과 도정률이 다른 품종에 비해 낮습니다. 그래서 수매가를 20% 정도 더 드려도 왜 계속 가와지쌀을 재배해야 하냐며 볼멘소리하는 농가가 적잖습니다. 그럴 때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품종을 심어서 제공하는 것이 농업인의 소명 아니겠나며 설득하고 있습니다.”

 

고양시쌀연구회는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외부 컨설팅까지 받았다. 1인 가구를 위한 다양한 소포장을 출시하고 전국 유통망을 촘촘히 구축하고 있다.

 

“고양시가 가와지쌀 홍보 적극적이고 진심인 게 고맙습니다. 작년에 시작된 고양시의 가와지쌀 재배 지원이 올해로 끝납니다.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 좀 더 지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가와지쌀에 대한 애정과 확신, 철학이 느껴졌다.

 

고양시쌀연구회는 지금까지 가와지쌀을 미국에 26t 수출했다. 양은 많지 않지만 수출가가 1kg당 4천원이다. 물류비도 수입업체가 부담한다. 제값 받고 수출한다는 자부심이 크다.

 

“LA와 뉴욕에서 판매되는데, 뉴욕은 교포가 아닌 현지인 구매비율이 70%에 달합니다.”

 

땅을 팔고 편히 살고 싶은 유혹은 없는지 물었다.

 

“너무 바빠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우수농산물(GAP)·친환경·시설·농가인증부터 재배면적 확인까지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 꽉 차 있어 유혹이 들어올 틈이 없죠.”

 

마지막으로 아들이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찬성하겠냐고 물었다.

 

“안 그래도 슬쩍 권해봤는데 농사는 싫고 직장생활을 하겠답니다. 중고등학교 때 농사일을 시킨 게 역효과를 낸 것 같아요.”

 

왠지 그의 아들도 직장생활을 하다 40대가 되면 가와지쌀 사랑에 빠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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