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주노동자 건강·안전 위협, 비닐하우스는 집 아니다

농촌의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숙식하며 생활한다. 이들에게 기숙사나 다름없다. ‘비닐하우스는 사람이 살면 안 되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비닐하우스 안에 조립식 패널이나 컨테이너로 가건물을 만들어 몇 명씩 머문다. 전기장판이나 전기히터로 난방을 하지만 강추위를 막기 어렵다. 화재 등 재난에도 취약하다.

 

2020년 12월, 포천시의 한 농장에서 캄보디아 국적 속헹씨가 비닐하우스에서 자다가 숨졌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한파 경보에도 난방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탓이다. ‘속헹 사건’ 이후 농촌 이주노동자의 주거 여건 개선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이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주노동자 주거안정 대책은 헛구호에 그쳤다. 여전히 곳곳에서 비닐하우스와 농막 등 불법 가건물이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로 쓰이고 있다. 관리도 안 되고 있다.

 

본보 기자가 현장을 돌아봤다. 포천시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네팔인을 만났다. 지난해 8월 비전문취업비자(E-9)로 입국한 이 노동자는 보일러 없는 차가운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잔다. 곰팡이가 핀 비닐하우스에서 두꺼운 점퍼 3~4개를 껴입고 자는데 너무 춥다고 하소연했다. 여주시에서 일하는 캄보디아인도 비닐하우스를 불법 개조해 만든 숙소에서 산다. 난방은 화목보일러로 한다. 그는 인화물질과 비닐이 뒤덮여 있어 화재 위험에 보일러 켜기가 겁난다고 했다.

 

올해 9월 말 기준 경기도내 E-9 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는 10만9천249명(37.4%)이다. E-9비자는 비전문 직종인 제조업, 건설공사업, 농업, 축산업 등에 종사하는 외국인에게 부여한다. 도농 복합지역이 많은 경기도 특성상 이들 이주노동자는 꼭 필요한 인력이다.

 

그런데도 이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다. 주거 형편도 나아지지 않았다. 불법 개조한 비닐하우스와 농막 등 가설건축물에서 월 30만~40만원씩 내고 사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이 한파가 몰아칠 겨울을 어찌 보낼까 걱정이다. 제2, 제3의 속헹이 나올까 우려된다.

 

정부와 지자체의 이주노동자 주거안정 대책은 실효성이 낮다. ‘경기도농어업 외국인근로자 인권 및 지원 조례안’은 무용지물이다. 지자체 지원범위가 농·어번기 등에 일시 허가하는 계절근로자(E-8)에만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E-9 이주노동자는 경기도에서 일해도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비자별로 관리 주체가 달라 도는 E-9 노동자에 대해 관리 근거도 없고 지원 계획도 없다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지속적인 단속을 해도 사각지대가 생긴다며 지도점검과 단속강화 방안을 찾겠다고 한다. 단속이 해결 방법은 아니다.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비닐하우스 기숙사를 금지하고, 안정적 주거환경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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