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방치된 도심 포구의 근대산업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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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명예회장

인천 도시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전·현직 기자 10여명이 모여 만든 연구 모임(일명 ‘기도 모임’)을 1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기도(記都)모임 회원들이 얼마 전 경인전철 동인천역~인천역 사이의 화수부두, 만석부두, 북성부두 일대를 도보 탐방했다. 인천아트플랫폼 재생사업의 총괄건축가로 활동했던 A건축가를 강사로 초빙해 인천항 일대의 근대산업유산 현장을 둘러봤다.

 

이 지역은 일본의 만주침략(1931년), 중일전쟁(1937년) 시기에 해안 매립을 통해 조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임해공업단지였던 역사적 현장이다. 아나타매립지의 동양방적공장(현 동일방직)을 비롯해 1938년 준공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일진전기(엣 도쿄시바우라제작소), 조선기계제작소, 조선강업공장, 조선화학비료, 인천제정, 조선이연금속과 같은 중공업 및 군수공장이 줄지어 늘어섰던 곳이다. 여전히 옛 건물을 간직하고 있는 동일방직, 일진전기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증·개축이 이뤄진 공장지대다.

 

기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공장은 자못 웅장한 자태의 일진전기 10개동의 옛 건물이었다. 화수부두 해안가를 따라 적벽돌로 지어진 독특한 모습은 언 뜻 봐도 예사롭지 않다. 2014년 공장 이전 뒤 영화 및 광고 촬영지로 이용되다 현재 임대 창고로 활용되고 있다.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공장 뒷마당이라도 개방하면 멋진 도심 포구공원이 될 적지 같았다. 최근 ‘공업지역 활성화 시범사업’이 추진됐으나 기업 측의 거부로 무산된 상태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도심 포구인 화수·만석·북성부두 일대엔 일진전기와 같은 귀중한 산업유산이 상당수 남아 있다. 그럼에도 고유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어 유럽의 산업유산 재생프로젝트와 비교해 보더라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명품 시계로 유명한 스위스 내 제2의 도시 취리히는 황혼길로 접어든 허름한 중공업지대를 문화예술 및 상업 명소로 탈바꿈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2000년대 전후로 공장지대였던 취리히 웨스트에 도시재생의 생명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방치된 뢰벤브로이 맥주양조장에 젊은 예술가를 끌어들이고 현대미술관, 다국적 화랑을 잇따라 유치하면서 일약 현대미술의 메카인 ‘뢰벤브로이 예술단지’가 탄생한다. 이를 계기로 1860년 지어진 조선소가 실험극장, 공연장, 재즈클럽, 레스토랑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1898년 건립된 제철회사가 쇼핑센터, 전시공간을 갖춘 현대식 핫플레이스로 각각 재생된다.

 

이 외 영국 런던의 트루먼 브루어리 양조장이 예술가 마을로, 독일 카를스루에의 탄약공장이 미디어아트 메카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가스공장이 친환경 아이콘 문화공원으로 변신하는 등의 성공 사례는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인천 도심 포구에 남아 있는 소중한 산업유산도 ‘창조의 어머니’로 받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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