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엔데믹에… 장애인 근로자 생계 ‘벼랑 끝’ [우리는 일회용이 아닙니다 上]

사업 유지 의무기간만 8년 달해 "남은 건 유지 부담과 기계뿐"
시설 특성상 장애인 해고 불가...임금 줄이거나 시설 내 활동 못해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작은행동 한사랑' 소속 장애인들이 단순 작업을 하는 가운데, 정부에서 지원한 마스크 생산 기계가 한쪽 구석에 방치돼 있다. 이지민기자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작은행동 한사랑' 소속 장애인들이 단순 작업을 하는 가운데, 정부에서 지원한 마스크 생산 기계가 한쪽 구석에 방치돼 있다. 이지민기자

 

“마스크 생산에 협조했는데, 남은 건 멈춘 기계뿐이네요”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작은행동 한사랑’에서 만난 이영설 원장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시설에서 생산하던 마스크가 수요 급감으로 생산이 중단되면서 공정에 투입됐던 장애인들의 일거리가 줄었기 때문이다.

 

현재 시설 소속 35명의 장애인 중 20명만 경제 활동을 하고, 나머지 15명은 담당이 배정되지 않은 채 훈련생으로 남겨져 있다.

 

작은행동 한사랑은 지난 2020년부터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당시 마스크 생산에 참여했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하자 마스크 업체에 생산 확대를 주문하는 등 긴급 체제에 돌입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역시 이런 국가적 재난 대응에 기여하고자 마스크를 신규 생산품으로 지정, 보건복지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마스크 생산에 나섰다.

 

그러나 시설은 본격적인 마스크 생산은 하지 못한 채 기계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기계 등 마스크 생산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땐 이미 마스크가 시중에 넘쳐났기 때문이다.

 

시설이 복지부 예산을 지원받은 때는 2021년 상반기. 시설은 기능보강 예산 2억9천700만원으로 마스크 생산 기계 2대와 포장기 1대를 구매했다. 또 식약처에서 정한 제조업소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인근에 120평 규모의 공간을 자비로 임대했다. 그러나 시설에서 생산한 마스크는 2021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3만장. 연간 생산량인 72만장의 2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현재 시설은 임대 공간을 정리하고, 마스크 생산 기계를 시설 내로 옮겼다. 사용 흔적도 찾기 어려운 생산 기계엔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으며, 필터 등 원자재는 창고에 가득했다. 판매되지 못한 마스크는 박스 포장을 뜯지도 못한 채 남겨져 있었다.

 

이 원장은 “초반엔 마스크를 생산해 수원시와 사회복지기관 등에 납품도 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며 “마스크 생산에 참여해 매출이 오르면 일자리도 늘리고 장애인 급여도 인상하고자 했는데,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토로했다.

 

도내 또 다른 시설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마스크만 생산·판매하는 A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마스크 생산 기계를 3대나 보유하고 있지만 수요가 줄면서 기계 가동이 중단, 시설 소속 21명의 장애인은 현재 단순 노동에 투입된 상태다.

 

더욱이 시설들은 마스크 생산 기계를 반납하거나 처분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장애인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부 기능보강 사업은 내용 연수 기간에 따른 사업 유지 의무 기간이 발생하는데, 마스크 생산 기계와 같은 자동화생산시스템의 사업 유지 기간은 8년에 달한다.

 

시설 관계자는 “당시 기계를 기능보강 예산으로 지원받은 탓에 지금부터 7년은 더 갖고 있어야 한다”며 “멈춘 기계 유지보수 부담만 계속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수원시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내 가동이 멈춘 마스크 생산 기계에 생산을 마친 마스크들이 쌓여있다. 이지민기자
수원시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내 가동이 멈춘 마스크 생산 기계에 생산을 마친 마스크들이 쌓여있다. 이지민기자

 

■ 코로나 해방된 대한민국…정작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위기 시작

 

2020년 첫 국내 코로나19 확진(양성)자가 발생하며 ‘마스크 대란’이 이는 등 전국이 코로나 페닉에 빠졌다.

 

정부는 안정적인 마스크 수급을 위해 민간 마스크 생산 기업에 생산량 확대 등을 주문했고, 장애인직업재활시설도 마스크 생산을 시작하며 정부와 국민의 마스크 확보에 도움을 보탰다.

 

이런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마스크 수급량은 이내 안정을 찾았고, 백신 등 대응 방안이 속속 마련되며 코로나19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정부의 단계적 일상생활 회복 조치 이후 현재 국내외 여행, 자유로운 문화생활 등 온 국민이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지만 장애인직접재활시설은 여전히 위기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 당시 마스크 생산에 참여한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40곳으로, 2019년(1곳)보다 3900% 증가했다. 그러나 코로나 엔데믹과 동시에 공적 마스크를 생산, 공공기관에 납품하던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한순간 모든 판로가 막혀 버렸고 기계는 멈춰 섰다.

 

지난 7월 기준 전국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내 마스크 생산 기계 중 14.5%만 가동되고 85%가량은 마스크 생산을 멈춘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앞서 마스크 생산을 활성화하기 위해 근로 장애인을 대폭 늘린 시설은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았다. 전체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서 마스크 생산 공정에 투입된 장애인은 590명으로, 대부분은 다른 공산품을 제조하다 마스크 생산 공정에 투입됐으며 훈련 과정인 장애인들도 일부 마스크 생산을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현재 다시 제조하던 제품 공정으로 돌아갔지만, 또 일부는 생산 작업에서 제외되는 등 마스크 수요가 줄자 장애인들의 일거리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런 가운데, 시설 특성상 장애인을 해고할 수 없어 임금을 줄이거나 시설에서 활동하지 못해 장애인 가족들의 부양 부담이 커지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유기학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마스크생산시설협의회장은 “코로나 엔데믹으로 마스크 수요가 줄자 마스크업계가 한순간 무너졌다. 그중 우리 장애인직업재활시설과같이 특수한 곳은 단순히 일거리가 줄었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장애인의 생활을 넘어 생계, 가족까지도 여파와 맞물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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