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정신과 육체의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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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민 인천산업디자인협회 회장·인하대 디자인융합학과 교수

오전 5시 반. 어김없이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의 알람을 들으며 눈을 뜬다. 일어날까 아니면 오늘은 일요일이니 그냥 더 잘까를 두고 이불 속에서 망설인다. 잠시의 유혹을 떨쳐내고 늘 하던 하루의 루틴을 시작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단지의 커뮤니티센터에 들어서는 순간. 툭탁 툭탁 툭탁, 흐읍 흐읍, 끄응 끄응 등 건강한 육체를 만들기 위한 아침을 시작하는 소리로 가득하다. 나 역시 늘 하던 대로 트레드밀의 스위치를 올리고 서서히 워밍업을 거쳐 4, 6, 8마일로 스피드를 올리고 잠자던 육체를 깨우며 건강을 만든다.

 

며칠 전 미국의 기업 테슬라에서는 새로운 안드로이드 로봇인 옵티머스_Gen2를 선보이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불과 1년 전의 어설프고 혼자 직립해 있는 상태도 불안해 보였던 수준에서 올해 제법 로봇다운 모습과 사물을 취사선택하는 모습을 넘어 이제는 세밀하고 고도화된 자세의 제어와 유연한 손가락의 움직임과 관절의 움직임, 그리고 한결 미래지향적으로 느껴지는 외관 디자인까지 보여줘 공상과학소설과 영화에서 상상했던 그 모습에 다가가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면서 이제 많은 사람들은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의 등장으로 우리의 삶도 혁신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인간의 육체가 해오던 일들이 변화될 것이며 특히 인간의 물리적 노동력은 상당 부분 로봇이 대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얼마 전 다른 미국의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선보인 챗GPT-4로 대변되는 인공지능(AI)의 재등장으로 인한 충격에 연이어 미래에 대한 진보의 속도감을 느끼면서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한 기대와 흥분과 함께 또 다른 한편으로 기어 올라오는 두려움과 근심은 보이지 않는 내일에 대한 인간의 초라한 미물로서의 쇠약함과 과민증만은 아닌 것 같다. 1980년 미래학자인 엘빈 토플러가 새로운 정보혁명과 정보사회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내놓은 책인 ‘제3의 물결’에서 이야기했듯이 미래에 대한 예상과 기대는 인간을 보다 용감하고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지만 이와 함께 옆으로도 또는 역설적이게도 거꾸로도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언급한 내용이 기억난다.

 

디자인학과 교수로서 디자인 수업과 디자인 작업을 계속 해온 필자에게 4차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다양한 사건과 뉴스들은 하루도 넘어가는 일 없이 매우 속도감 있고 다양하게 다가오고 있으며 실질적인 디자인 연구 과정에서도 매우 빠르게 확산되고 활용되고 있다. 특히 국내의 경우 80년대 말부터는 디지털화된 그래픽표현의 방법론이 다양하게 진화하며 디자인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래픽디자인의 오랜 고전이자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타이포그래피수업은 이제 디지털 폰트와 DTP(Desk Top Publishing) 등을 제외하고는 논할 수 없으며 종이 인쇄에 대한 역할론보다는 디지털매체와 온라인 플랫폼으로 대변되는 뉴미디어의 의미론이 보다 부각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필자가 진행했던 오래전 대학의 디자인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진행시킨 디자인 과제가 떠오른다. 모두 가지고 있는 컴퓨터와 관련된 툴은 치워두게 하고 조교를 통해 모눈종이, HB 연필, 자, 지우개를 나눠주고는 본인의 한글 이름 석 자와 영문 이름을 각각 명조(바탕), 고딕(돋움) 형식으로 종이에 디자인하게 했다. 예상했듯이 눈뜨고 볼 수 없는 본인의 이름 형태를 보고 놀란 것은 역시 담당교수가 아닌 그 자신이었으리라. 그것도 1학년도 아니요 졸업을 1년쯤 앞둔 3학년들에게는 꽤나 충격이었을 것이다.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괜찮은 것일까’라는 화두가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기술의 진보, 나아가 새로움의 혁신은 시대의 흐름이자 역사의 발전을 이루는 주요한 동력이다. 하지만 AI가 인간의 뇌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새로운 혁신을 통해 기존에서 보완된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보완돼야 하는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잘 만들어 놓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출발선은 다를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뇌로 대변되는 정신의 고양과 물리적으로 건강한 육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시대로서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매일매일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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