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우리말 바로 쓰기 계획

최재용 인천연수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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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인천시교육청이 ‘우리말 바로 쓰기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정책이나 사업에 쉽고 고운 우리말을 쓰겠다는 내용이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학부모 에듀 페스티벌, 캐릭터 굿즈 이미지 공모전....

 

이처럼 굳이 안 써도 될 외국어나 어려운 한자 등을 쓰지 않고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을 쓰겠다는 말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교육을 책임진 기관이 우리 말과 글을 살리는 데 나선다고 하니 무척 다행스럽고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그동안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이와 똑같은 발표를 했다가 얼마 못 가 흐지부지한 사례들을 보아왔기에 “혹시나 또...” 하는 걱정도 든다.

 

외국어를 많이 써야 ‘국제화·세계화 시대’에 발맞추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청소하는 날’을 ‘클린업 데이’라 하고, ‘깡통 분리수거 행사’라 하면 될 것을 ‘캔 크러시 챌린지’라고 부르는 식의 일들이 거듭 벌어진다. 따로 설명을 듣지 않고 이런 이름들이 무슨 내용인지 한 번에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말과 글은 소통(疏通)이 핵심이다.

 

특히 시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공기관이나 업체들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말과 용어를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시민들이 그 내용을 잘 몰라서 손해를 보거나, 잘 지키지 않는 일이 안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앞서 말한 구체적 사례들뿐 아니라 경찰·검찰·법원에서 쓰는 난해한 법률 용어, 죽을병에라도 걸린 것인가 하고 겁부터 먹게 만드는 병원 용어, 읽다가 지칠 지경인데도 핵심은 알기 어려운 보험이나 금융상품의 약관(約款)을 보라.

 

이들은 모두 시민들의 일상에 깊이 관계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어렵고 아리송하게 표현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책임을 고스란히 피해자인 시민에게 덮어씌우려는 꿍꿍이속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쉬운 말과 글을 쓰도록 사회 환경을 바꾸는 일은 시민 각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국제화·세계화’도 각자 다른 언어와 문화를 잘 발전시키고 서로 존중하면서 조화롭게 섞여 사는 것이지, 내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다. 말과 글이라는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문화 자산을 스스로 낮춰보고 남의 것을 무작정 숭배하는 얼빠진 사람들이 어떻게 국제적인 도시와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이번 시교육청의 계획이 잘 지켜지고, 다른 곳으로도 널리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사뭇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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