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심씨 사평공파 묘역서 복식 200여점 직접 수습해 5년여 보존처리 거쳐 공개
지난주 개봉한 영화 ‘파묘(破墓)’는 이장을 둘러싼 기이한 사건들을 다룬다. 무속인과 풍수사, 장의사가 등장해 한국적 오컬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와중에 근대사의 굴곡까지 함께 엮어내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가 다루는 한국의 매장문화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유교의 의례를 따르면서도 불교, 도교의 생사관이 함께 녹아 있고 민간신앙 또한 함께한다.
파묘는 무덤을 여는 행위를 말한다. 사실 경기도박물관만큼 파묘에 많이 관여한 기관도 드물다. 도내 문중 및 기증자의 무덤을 이장할 때 자문을 지원하는 ‘찾아가는 유물 지킴이 사업’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문화재 전문가의 의견 없이 이장을 진행하면 중장비에 눌려 땅속에 묻힌 도자기가 부서지거나 관 속 유물이 그대로 버려지는 일 등이 허다하게 일어난다. 박물관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진행 중인 특별전 ‘오늘 뭐 입지?’에서 선보이는 40여점의 복식 유물도 ‘지킴이 사업’의 결과물이다. 지난 2017년 10월, 청송 심씨 사평공파 문중의 이장 계획을 전해 들은 것이 시작이었다. 주말을 반납한 학예사들이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이장 작업에 직접 참여했고 그 결과 지석(誌石·죽은 사람의 인적 등을 적어 묻는 돌이나 자기)과 명기(明器·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그릇 따위)를 비롯한 수많은 유물을 손상 없이 수습할 수 있었다.
사평공파 무덤에서 나온 유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복식이었다. 무덤 3기에서 200여점의 복식 유물이 출토됐는데 모두 17세기 사대부 집안의 옷차림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였다. 무덤 안에서 옷이 썩지 않고 남을 수 있었던 비밀은 조선시대 매장 방식의 특성에 있다. 목관을 보호하기 위해 석회와 모래, 황토를 섞은 ‘삼물(三物)’로 관 주변을 두툼하게 감쌌던 것이다. 제대로 회격(灰隔)이 만들어지면 관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돼 복식의 부패 속도가 크게 느려진다.
유물을 수습하는 것은 일의 시작일 뿐이었다. 복식은 무덤 안에서 수백 년간 시신과 함께 있었기에 특유의 냄새가 심하고 섬유는 매우 약해져 있다. 그만큼 유물의 상태를 안정시키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했다. 먼저 옷에 바람을 쐬고 소독을 해 미생물의 활동을 막은 후 적절한 방식을 찾아 세척과 강화 처리를 했다. 기록에 근거해 옷의 형태를 보정하고 약한 부분은 보수했다.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해 보고서를 만든 것은 물론이다.
박물관에 들어온 유물이 특별전을 통해 관람객을 만나기까지 5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곱게 꼰 명주실을 가로세로 짜맞춰 만든 무늬를 전시장 너머로 보고 있으면 조선의 멋을 소박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봄이 되면 이 옷들은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전시를 위해 한동안 미국 나들이에 나선다. 소중한 유물을 직접 마주할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전시는 3월10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정윤회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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