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춤추고 노래하는 21세기 예인”…안영화 예기 대표

연출가로서 지역 콘텐츠 개발
전통예술 상설공연 선정되기도
행궁 ‘가회당’서 국악 등 선봬
“예술 접할 기회 많이 만들 것”

지난 18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복합문화공간 '가회당'에서 만난 아트컴퍼니 '예기'의 안영화 대표. 이나경기자
수원시 팔달구 복합문화공간 '가회당'에서 만난 아트컴퍼니 '예기'의 안영화 대표. 이나경기자

 

“까만 보자기 안에 손을 넣고 어떠한 조각들을 주물럭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딱 끼워 맞춰지는 짜릿한 순간이 와요. 맞추기 전까지는 ‘이게 과연 될까’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하고. 그렇게 알 수 없는 조각들을 설렘과 긴장으로 맞춰가는 작업이 연출이라 생각합니다.”

 

경기도립무용단 수석단원을 거쳐 역사가 담긴 문화원형을 소재로 지역 공연콘텐츠를 개발하는 공연기획의 연출가이자 경기도 지정 전문예술단체 ‘예기’의 대표까지. 안영화 대표(58) 앞에는 여러 수식어가 함께한다.

 

안 대표는 지난 달 수원화성의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열린 정조와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를 다룬 ‘해후’를 성황리에 종료하며 한결 홀가분한 미소를 보였다. 해후는 화성 행궁에서 진행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바탕으로 정조가 왕이 돼 겪은 어려움과 역경, 어머니와의 화해 과정이 담긴 전통예술 창작극이다. 한때 도립 수석 무용단원으로 정통 봉수당 진찬연 행사의 혜경궁 홍씨로 무용을 펼쳤던 그녀는 이제 연출가가 돼 지역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지난 2월23일~24일 양일간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열린 수원문화재단의 전통예술 창작극 '해후'의 막바지 공연이 한창이던 모습. 공연의 연출가인 안영화 대표(가운데)가 단원들에게 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나경기자
지난 2월 23일~24일 양일간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열린 수원문화재단의 전통예술 창작극 '해후'의 막바지 공연이 한창이던 모습. 공연의 연출가인 안영화 대표(가운데)가 단원들에게 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나경기자

 

연출가로서 그의 삶을 이끈 건 조선시대 예인, 기생들이었다. 안 대표는 2010년 무용단을 나와 수원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독립운동가이자 기생인 김향화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

 

안 대표는 “일패기생 김향화는 고종이 승하하자 동료 기생을 이끌고 수원에서 서울로 가 대한문 앞에서 망곡례를 올리고, 1919년 3월29일 수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라며 “수원 토박이 출신이자 같은 예인으로서 그녀의 이야기는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그때부터 그는 수원의 기생에 관한 역사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역사를 거듭 올라가 조선시대 이야기까지 닿게 됐다. 안 대표는 “의궤를 살펴보면 서울의 기생과 수원의 기생이 함께 봉수당 진찬연을 준비하는 모습도 있다”며 “만약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관에 소속됐던 관기였을 것이란 상상을 펼치며 그 속에 빠져 들었다”고 말했다.

 

한글로 번역된 수많은 역사서와 자료를 살펴보며 지역의 이야기에 매료된 안 대표는 대중이 쉽게 그 이야기를 접할 수 있도록 관광자원으로서 로컬 이야기를 풀어냈다. 1993년 도립무용단 수석단원을 역임하고, 201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약 일무 이수자로 선정됐던 그는 2011년 수원예기보존회(이후 ‘아트컴퍼니 예기’로 변경)를 발족했다.

 

지난 2월 가회당 연습실 공연에서의 안영화 대표의 모습. 이나경기자
지난 2월 가회당 연습실 공연에서의 안영화 대표의 모습. 이나경기자

 

한 마디로 ‘무모하지만 너무나 즐거웠다’고 그는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광복 70주년 기념 ‘수원, 그날의 함성’, 3.1운동 100주년 기념 시민문화재 ‘100년의 울림’ 등 고유의 사라져가는 전통예술과 인문학 자료 및 사료를 발굴하고, 연출은 물론 저서를 펴내며 전통문화 콘텐츠를 현대에 살려내고자 한 시간은 전국에서 단 두 팀만 꼽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통예술 지역브랜드 상설 공연에 선정되는 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엔 한 때 소규모 극단과 극장이 즐비했던 행궁동 공방거리에 복합문화공간 ‘가회당’의 문을 열었다. 연습실로 구상했던 공간을 공연이 열리는 소극장으로 만든 건 지역의 젊은이들 때문이다.

 

동료와 후배들은 고향을 벗어나 서울로 하나둘 떠났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젊은 사람들이 꿈을 펼칠 수 있게 서포트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조건 없이 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곳에선 국악과 재즈, 때론 연기와 무용, 무술과 전통 탈춤, 서커스 등을 수원 지역의 10대부터 60대 예술가가 함께하는 공연으로 담아낸다.

 

“전통을 얼만큼 해체하고 확장할 수 있을까는 정말 재밌는 작업이에요. 그런데 그게 나만의 장르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고, 다른 장르와 만나 시너지를 내는 게 지금 세대에 훨씬 맞다고 봅니다.”

 

이제 안 대표는 무용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한 콘텐츠를 만들면서 동시에 로컬의 이야기를 해외 시장에도 펼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는 “어떤 분야가 됐건 최대한 많이 예술을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러한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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