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우당 이길범展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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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섭 논설위원

장수는 축복이다. 한국화가 이길범에겐 더 그렇다. 올해 97세인 작가가 수원시립미술관 초대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2017년 그림인생 70주년을 기념해 ‘우당 이길범 회고전’이 열렸다. 수원미술협회 한국화분과 회원들이 마련했다. 작가 나이 90세 때다. 우당은 “이번이 여섯 번째 개인전인데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했다.

 

지금 우당의 일곱 번째 개인전이 열린다. ‘이길범: 긴 여로에서’라는 전시는 수원작가에 대한 재평가 및 연구의 일환이다. 지역미술관이 지역작가를 조명하는 작업은 일종의 의무 같은 것인데 그동안 소홀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의미있게 평가된다.

 

전시는 그림 소재에 따라 영모화조(새·짐승·꽃 등), 인물, 산수풍경으로 구성해 대표작을 걸었다. 전시를 기획한 이채영 학예사는 “수십 년간 수원을 기반으로 활동한 원로작가 이길범을 조명해볼 수 있는 기회”라며 “작가 특유의 온화하고 담백한 미감이 주는 정서적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길범은 이당 김은호의 제자다. 1927년 수원군 양감면에서 태어난 우당은 17세 때 산수·화조·인물 전 분야에 걸쳐 명성이 높은 김은호를 만나 문하에서 6여년간 그림을 배웠다. 1949년 화조화 ‘춘난’으로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해 등단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었다. 제2국민병으로 소집돼 대구와 제주, 부산에서 훈련괘도를 그리며 복무했고, 전역 후엔 대한도기와 대한교육연합회에서 도안 디자인과 삽화를 그리며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50세가 넘어 전업작가의 길을 걸으며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다. 1982년 수원미술계에 첫 한국화 동인인 성묵회를 결성했고, 미술협회 수원지부장도 역임했다. 당시 정부표준영정 작가로 참여하는 등 인물화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정조’ 어진이 대표작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 전시에서 주인공을 만날 기회가 없다. 영상을 통해 인터뷰 내용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거동이 불편한 것도 아닌데 작가를 초청해 축하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다. 원로작가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전시다. 그동안 외국 작가전은 오프닝 행사를 거창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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