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여 스님 보리선원
꽃샘추위 끝에 드디어 온 세상이 봄의 생명력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 아름다운 봄이 왔다. 화사하고 따뜻한 봄 내음이 향긋하게 코끝을 간지럽히고,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오고,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꽃비 내리는 듯하다. 봄이 무르익기 시작하면서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야외로 봄나들이를 한다. 생명력 가득한 이 계절에 봄처럼 밝은 기운을 서로 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봄비가 내리는 봄에는 부처님 경전인 법화경 ‘약초유품’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난다. “비유컨대 삼천대천세계의 산과 내와 골짜기와 땅 위에 나는 모든 초목이 많지만 각각 그 이름과 모양이 다르니라. 먹구름이 가득 퍼져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고, 일시에 비가 고루 내려 흡족하면, 모든 초목의 크고 작은 줄기와 가지와 잎과 뿌리가 제각기 비를 받느니라. 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가 그들의 종류와 성질을 따라서 자라고 크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나니, 비록 한 땅에서 나는 것이며 한 비로 적시는 것이지마는, 여러 가지 풀과 나무가 저마다 차별이 있느니라.”
큰 구름이 비를 내려 온 대지를 골고루 적시지만 모든 수목은 각기 종류와 성질에 맞게 비를 흡수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비가 내려 온 대지를 적시듯이 부처님의 가르침도 일체 중생에게 조금도 차별이 없이 평등하지만 중생들의 근기와 성품과 욕망이 달라 각자 자기의 그릇만큼 받아들이고 성장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피어나는 꽃들도 마찬가지다. 차별 없이 봄비는 내리지만 서로 다르게 받아들인다. 꽃의 모양과 색깔, 피어나는 시기, 향기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꽃은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 꽃은 서로를 비교하면서 우월을 다투지 않는다. 좀 더 빨리 피어 우쭐대지도 않고, 늦게 핀다고 해서 슬퍼하지도 않는다. 또 꽃은 크기와 모습이 달라도 서로 비교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개성과 특색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운다. 피어난 꽃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꽃잎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언젠가 때가 되면 꽃을 피우게 될 것을 기약하면서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송이 꽃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해 우열을 가리고, 우월감 또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스스로 괴로움에 빠진다. 또 꽃을 피운 결과만 보고, 꽃을 피우기까지의 과정을 보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한다. 한 송이 꽃이 그냥 피어난 것이 아니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햇볕과 비, 흙, 바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봄이 되기를 기다린 인내심까지 더해져야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떤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피와 땀과 눈물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노력 외에도 주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줬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어떤 일의 결과에는 원인이 있고, 우리는 눈앞의 결과보다도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여정을 거쳐 왔는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 눈앞의 실패와 성공의 여부보다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더 중요하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더 빨리 성공하려 하다 보니 욕심이 눈을 가리고 판단력이 흐려져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은 느긋하게 시절 인연을 기다리면서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믿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좋겠다. 때가 돼야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듯이 언젠가 때가 되면 각자의 방식으로 저마다의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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