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빛 바랜 역사적 인물

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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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분들을 기리는 명예도로가 새롭게 지정돼 박수를 친다. 한국 미학을 개척한 우현 고유섭 선생이 성장한 인천 용동 큰우물 주변 260m의 ‘고유섭길’, 사학비리가 들끓던 인천대를 시립화한 최기선 전 인천시장 업적을 기리는 인천대 송도캠퍼스 600m의 ‘최기선로’,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윤영하 소령의 모교인 송도고 앞 독배로 465m의 ‘윤영하소령길’이다. 그간 고유섭, 김구 선생의 호를 딴 우현로, 백범로를 지정해놓긴 했어도 이분들을 극진히 모시지 못했다. 우현 족적을 살필 수 있는 기념관이 없어 그의 진가를 아는 시민은 많지 않다. 구한말~일제강점기 인천감리서에 두 번 투옥되면서 탈옥 뒤 강화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인천내항 1부두 석축 공사 노역에까지 동원됐던 백범의 인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인물을 기리느냐에 따라 도시 품격이 달라진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 시내 건물과 거리엔 역사적 인물과 사건 현장을 기념하는 표지판이 수두룩하다. 인천에도 일제에 항거한 3•1운동 만세시위 거리, 독립운동가 흔적이 많으나 시민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

 

얼마 전 우현 타계(1944년) 80주년을 맞아 그분의 미학 정신을 접할 수 있는 경주 감포 앞바다에 갔었다. 우현은 “죽어서도 왜구를 막겠다”며 유골을 동해에 뿌려 달라고 유언한 신라 문무왕을 흠모했다. 문무대왕 수중릉이 바라다보이는 이견정(利見亭) 바로 밑에 우현 정신의 상징인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글을 새긴 추모비가 있다. 우현 추모비 쪽으로 가는 도중 경주 문인 김동리, 박목월을 기리는 ‘동리목월문학관’에 들러보니 감동스러웠다. 문학관은 두 사람 생애를 소개하는 영상물을 보여주고 습작 노트, 서재, 유품, 작품집을 감상하도록 했다. ‘역사를 품은 도시, 미래를 담는 경주’라고 내세울 만했다.

 

인천에도 역사적 인물이 많으나 그리 빛내지 못하고 있다. 고려 대문호 이규보의 묘가 강화도에 있으며 임진왜란 의병장인 조헌 장군의 호를 딴 도로가 서구 중봉대로다. 한국 첫 근대 군함장 신순성, 평화통일을 외친 죽산 조봉암, 일장기 말소 사건의 이길용 기자를 알리는 기념공간이 없다. 문화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극작가 함세덕, 추사 명맥을 잇는 서예가 유희강,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 한국 미술계의 산증인 이경성, 첫 세계 여행가 김찬삼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다. 이제 역사적 인물과 장소를 소중히 여기는 도시라는 소리가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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