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무원 이름 비공개, 악성민원 막을 근본대책 못 된다

악성 민원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민원에 시달리던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엔 김포시 9급 공무원이 야간 포트홀 공사로 교통정체가 야기되자 다수 민원인들로부터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온라인에서 신상이 공개되는 등 괴롭힘을 당하다 사망했다. 지난달엔 의정부시청 공무원과 또 다른 김포시청 공무원이 사망했다.

 

올해 연이어 발생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상당수 지방자치단체가 홈페이지에 공개해 오던 공무원 성명과 업무 등을 비공개로 바꿨다. 일부 기관은 부서 출입문 앞 직원 배치도와 사진도 없앴다. 부산 연제구는 홈페이지에 선출직인 구청장 이름까지 지웠다.

 

경기도 31개 시·군 중에 12개 지자체가 홈페이지 누리집 조직도에서 직원 이름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김포시와 화성시, 의정부시, 오산시, 과천시, 양평군 등은 ‘김○○’처럼 직원 이름에서 성만 남기고 이름을 익명 표기했다. 수원특례시, 고양특례시, 시흥시, 안성시 등은 직원의 성과 이름 모두를 삭제했다. 직원 이름이 모두 공개된 상태로는 악성 민원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직위와 업무, 사무실 전화번호 등만 게재한 것이다.

 

행정안전부도 이달 초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대책’을 내놓았다. ‘온라인 좌표찍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공무원 개인정보는 비공개 처리가 가능하도록 하고, 민원인이 폭언을 하면 담당 공무원이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이에 공무원 이름 비공개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측된다.

 

악성 민원은 심각한 인권 침해일 뿐만 아니라 공무방해 행위다. 악성 민원인들로부터 공무원 보호 조치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무조건 익명 전환이 적절한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자칫 공무원의 책임 회피로 이어질 수 있고, 행정의 투명성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잖아도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 민원 상담을 하려면 담당 부서가 아니라며 전화 ‘뺑뺑이’를 돌리는 사례가 종종 있다. 업무 담당자를 비공개로 하면 익명 뒤에 숨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공직사회의 익명 전환 추세를 놓고 ‘민원 장벽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작용을 막기 위해 각 지자체가 민원인 소통을 강화하는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조건 비공개로 전환하기보다 지역 사정과 민원 강도에 따라 익명 정도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 이름 비공개가 악성민원을 근절할 수 있는 근본책이 아닌 만큼 국민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실효성 높은 대책을 더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한 인력, 예산 확충도 뒷받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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