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먹통 전세사기 상담전화... 디테일 놓치는 행정이다

전세(傳貰)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주거 관습이다.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 역할로 정착했다. 그러다 2~3년 전부터 사기 범죄의 온상이 됐다. 처음 인천에서 촉발된 전세사기 범죄가 끝날 줄 모른다. ‘전세 포비아’라는 사회적 공포 현상까지 생겨났다. 어려운 이들의 생명줄 같은 돈을 노린다니, 병든 사회인가.

 

문제는 애꿎게 전세사기에 걸린 피해자들의 절망감이다. 인천에서만 3천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려 인천시도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를 운영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전화 상담 한 번 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지원센터 전화 상담의 부재중 전화가 월평균 1천300여건에 이른다. 애타게 불러도 대답 없는 전화 상담 서비스다. 상담 수요가 너무 많거나 상담 인력이 부족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8개월 치를 보니 부재중 전화가 9천건이 넘었다. 상담도 받지 못한 채 끊어진 통화들이다. 현재 인천센터에는 인천시 공무원 3명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직원 등 6명이 있다. 이러니 인천센터가 하루 소화할 수 있는 전화 상담은 180건 남짓이다. 상담 전화 1통당 평균 20분씩 걸린다고 봤을 때다. 인천시도 상담사가 부족해 부재중 전화가 많은 것을 안다. 그러나 전세사기 피해 당사자들은 속이 터질 지경이다. 이들 대부분은 잘 살던 집이 경매에 들어간다 해서 깜짝 놀란 사람들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기를 잡는다. 그런데 마냥 통화중이다.

 

계속 전화를 돌리지만 상담사 목소리도 들어보지 못한다. 겨우겨우 연결이 돼도 금방 통화가 끝난다. 은행이나 HUG에 알아보라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다. 해결책은 고사하고 전화 연결조차 안 되니 하소연할 곳이 없다. 인력도 태부족이고 전문성도 떨어지는 인천 전세사기 상담 전화다.

 

지난 28일 야당 주도의 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정부 여당과의 이견으로 폐기 가능성이 높다. 물론 피해 구제나 회복은 중요하다. 그에 앞서 막막해하는 시민을 위무하고 해결책을 안내하는 일은 첫 번째 지원이다. 인천과 달리 경기도는 23명이 전세사기 피해에 대응하고 있다. 인천보다 전세사기가 덜한 부산, 대전 등도 전담부서를 운영 중이다.

 

이미 인천시의회도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의 인력 부족을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천시는 올 하반기에나 상담 인력을 1명 더 늘릴 계획이다. 전세사기 피해 전화 상담은 인천시민이 당하고 있는 고통에 대한 최초 대응이다. 이주비나 생계비 지원 등보다 더 긴요한 도움일 수 있다. 이런 디테일을 놓치면 시민의 아픔에 다가가지 못하는 행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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