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없던 규제 적용… 설비 못 늘리고 규제에 가로막혀 자연녹지지역 기업 ‘진퇴양난’
“새로운 규제가 생겼다면서 사업 확장을 못 하게 하니, 결국 떠날 수밖에요.”
20년 넘게 경기도 포천시에서 가죽 제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A씨. 작업 특성상 페인트를 사용하며 분진이 발생하는 그의 사업장은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기준에 따라 4종 사업장으로 허가를 받았다.
최근 사업이 점점 번창하며 생산량이 늘자 A씨는 사업 확장을 목표로 공장을 증축해 더 많은 생산설비를 갖추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A씨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오히려 오랫동안 지켜온 지역을 떠나야 할 상황에 놓였다.
A씨는 지난 1999년 포천에서 공장을 설립했는데, 2002년 국토계획법이 제정되면서 정부가 현재 공장이 위치한 곳을 ‘자연녹지지역’으로 지정, ‘자연녹지지역에서는 오염물질 배출량을 늘릴 수 없다’는 내용의 새로운 규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생산설비를 늘리면 불가피하게 오염물질 배출도 증가할 수 밖에 없어 결국 A씨는 공장을 매물로 내놓는 결정을 내렸다.
4종 사업장인 도금 공장을 운영 중인 B씨의 사정도 마찬가지. 25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그의 공장이 위치한 지역이 자연녹지지역으로 변경됐다.
이 때문에 그의 공장은 작업량을 늘릴 수도, 규모를 키울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다른 방법을 취할 수 없었던 B씨도 결국 떠나기로 결정했다.
B씨는 “법이 생기기 전부터 이곳에서 공장을 운영해 왔는데, 뒤늦게 생긴 규제 탓에 사업을 확장할 수 없다”며 “정부 규제로 인해 애꿎은 기업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 법 제정으로 생긴 규제…자연녹지지역 공장들 ‘딜레마’
법이 제정되고 지역별 용도가 바뀌면서 기존에 없던 규제를 적용 받는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22일 국토교통부, 지자체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02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을 제정, 지역을 용도별로 세분화했다.
용도별 지역은 ▲주거 ▲상업 ▲공업 ▲녹지로 분류된다. 이 중 녹지지역에 속하는 자연녹지지역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자연환경과 농지·산림을 보호하고자 생겼다.
현행법상 자연녹지지역에 세울 수 있는 건축물은 첨단업종, 지식산업센터 등 환경에 유해하지 않은 업종만 건축이 가능하다.
이에 원칙적으로 자연녹지지역 내에서 ‘오염물질 배출 공장’은 운영될 수 없으나, 지역 용도가 변경되기 전부터 자리를 잡은 공장들을 위해 정부는 특례조항(국토계획법 시행령 제93조)을 만들어 오염물질 배출량이 증가하지 않는 선에서 영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가운데 기존 기업체들은 사업을 확장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오염물질 배출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어 결국 수십년간 기업을 운영해온 터전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오염물질 배출 기준으로 기업을 제한하는 등 영업 활동에 제약이 되는 규제를 정부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때가 됐다고 제언했다.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환경 처리 기술의 발달로 과거와 달리 도시 내에서 공존할 수 있는 작업이 확대되고 있다”며 “기업의 생산능력 확대가 가져오는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고려, 법 개정에 의한 기업의 피해 실태를 종합적으로 조사해 구제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토부 관계자는 “국토계획법상 자연녹지지역은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기 위해 시작한 곳으로, 조성 취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특례조항 확대는 어려운 상황으로,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기오염물질 배출 사업장은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연간 대기오염물질 발생량을 기준으로 1~5종 사업장으로 분류된다. 사업장별 연간 대기오염물질 발생량 기준은 ▲1종 사업장 80t 이상 ▲2종 사업장 20t 이상 80t 미만 ▲3종 사업장 10t 이상 20t 미만 ▲4종 사업장 2t 이상 10t 미만 ▲5종 사업장 2t 미만이다. 집중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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