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속보’ 한 줄에… 되살아난 5·18 그날의 악몽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기도지부 김장덕 사무국장 인터뷰
뉴스 보고, 무장 군인에게 당했던 과거 트라우마 떠올라
“명분도 절차도 없는 비상계엄령 선포… 민주주의 지킬 것”

4일 오전 수원특례시 팔달구 화서동에 있는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기도지부에서 김장덕 사무국장이 ‘광주의봄’ 사진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고 있다. 박소민기자
4일 오전 수원특례시 팔달구 화서동에 있는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기도지부에서 김장덕 사무국장이 ‘광주의봄’ 사진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고 있다. 박소민기자

 

“허벅지를 파고들던 대검, 머리를 내리치던 개머리판,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동료들이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4일 오전 수원특례시 팔달구 화서동에 위치한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기도지부에서 만난 김장덕 사무국장(70)은 지난밤 속보를 보며 “1980년대 그때가 떠올랐다”며 망설임 없이 답했다.

 

1980년 5월17일 전남대 앞. 20대 중반이던 김 국장은 학생들과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무장한 군인들과 마주 섰다. 현장에서 그는 군인들에게 끌려가 대검으로 허벅지를 수차례 찔렸고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맞았다. 눈앞에서는 죽어가는 동료들을 지켜봤다. 공포가 온 몸을 휘감았고 결국 그는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살기 위해 “잘못했다”고 연신 빌어야 했다.

 

그런 그에게 어제의 속보 한 줄은 과거 기억을 회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김 국장은 그동안 잊고 지내던 악몽의 순간들이 불현듯 떠올라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같은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소속 224명의 회원들도 김 국장과 같은 고통과 악몽을 떠올렸다.

 

하지만 결국 신군부 세력의 탄압을 이겨내고 성취한 ‘민주화의 봄’을 떠올리며 늙고 병든 노체(老體)를 일으켰다. 회원들은 김 국장에게 연락해 “광화문으로 가자”를 외치며 민주주의를 향한 변함 없는 마음을 내비쳤다.

 

김 국장은 “21세기에 계엄령 선포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며 “단 한 줄의 속보로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올랐지만 수많은 피와 땀이 뿌려져 이뤄낸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회원들과 다시 뜻을 모아 목소리를 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이날 김 국장은 자신의 뜻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듯 회원들과 함께 모여 그때와 같이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생애 생전 두 번의 비상계엄 사태를 경험했던 김 국장. 그는 어제의 비상계엄령은 과거와 확실히 달랐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과거에는 계엄령 선포로 인해 언론이 통제되면서 소식을 전달받기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언론이 아니더라도 커뮤니티나 메신저 등을 통해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소식을 접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계엄령 유지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비상계엄령 선포를 이행하는 과정에서도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1980년대 당시를 ‘모두가 준비된 쿠데타’였다고 정의했다. 이어 “당시 국민들은 수십년 동안 군사정권의 압박을 받으면서 국민들 간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번 비상계엄령에 대해서 그는 ‘아이들 생각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무런 명분도 없고 아무런 절차도 없이 진행된 비상계엄령 선포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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