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수원사 세영스님 “지역 사회의 등불이 되주고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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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수원사 회주 세영 스님. 김시범기자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행궁 동쪽 성곽길에 자리잡고 있는 수원사. 1920년 4월8일 ‘수원불교포교소’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전통 사찰이다. 2014년 수원사 주지로 부임해 현재 회주인 세영스님은 1976년 정무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 교육대학원 종교교육학과를 수료했다. 조계종 초심호계원장, 제11·12·14대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사회부장과 호법부장, 선거관리위원장을 지냈다. 여주 신륵사 주지, 평택 만기사 주지를 지내고 ‘포교·복지·행복’이라는 평생의 수행 원력으로 쌓은 공덕을 나누고 있다.

세영스님은 최근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 신임 대표이사로 선출되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픈 역사를 알리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세영스님을 만나 한국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했던 지난날에 대한 소회와 나눔의 집 운영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Q. 수원사에 부임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수원사는 어떤 곳이며, 어떤 일을 해왔나요.

A. 수원사는 불기 2465(1920)년 4월8일 당시 용주사 주지셨던 대련스님이 수원 지역 불자들을 위해 ‘수원불교포교소’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습니다. 여러 스님의 정진과 노력으로 전국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하는 가장 모범을 보이는 사찰 중 하나로 꼽히지요. 수원사에 주지로 부임했을 당시에는 수원사가 지역사회의 문화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길 바랐습니다. 사찰음식관과 다도체험관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머물렀다 갈 수 있도록 했지요. 특히 도심사찰로서 수원 및 인근지역 불자들의 정신적 귀의처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행복명상교육센터와 템플스테이를 운영해 생활불교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Q. 고통받고 소외당하는 이웃을 위한 행보를 이어왔는데, 스님에게 복지란 무엇입니까.

A. 어린 시절에는 염세주의였어요. 인생이 허무하고 덧없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방황하다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절을 찾게됐습니다. 처음 불교 사회에 들어와서도 방황의 연속이었어요.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했던 때가 스물 아홉으로 기억합니다. 주변에서 주지 스님을 하면 잘할 것이라고 추천하면서 얼떨결에 주지가 됐지요.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고심하다가, 처음으로 학교를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택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기도 했지요.  종교인으로서의 사명을 찾기 위한 여정은 계속됐어요. 그러던 중 환경운동의 선구자 도법스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환경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회적인 문제에 고민하게 됐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지요. 불교사회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었고, 그에 대한 답으로 ‘사회복지 활성화’를 찾게 됐습니다. 그렇게 사회문제가 내 문제가 됐고 사회적 책임감을 깊이 느끼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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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수원사 회주 세영 스님. 김시범기자

 

Q. 운영하는 복지 법인이 상당히 많을 걸로 압니다.

A. 여주 신륵사에서 주지 스님으로 있을 때도 장애인 작업장, 아동복지센터 등 14곳의 사회복지기관을 운영했습니다. 수원사에 와서도 팔달노인복지관, 서호노인복지관, 영통종합사회복지관, 영통어린이집, 영보노인요양원, 영보자애원(여성 노숙인 요양시설), 영보정신요양원 등 7곳의 사회복지기관을 운영·지원하면서 지역 사회의 등불이 돼주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Q. 12월5일 나눔의집 신임 대표이사로 선출됐습니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A. 나눔의 집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겪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였어요. 이곳에 가면 역사의 아픔이, 한 여성의 슬픔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나눔의 집에 다녀온 날이면 가슴이 아파서 잠을 못 이루기 일쑤였지요. 이러한 울림을 전 국민이 직접 경험하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Q.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A. 과거 잊힌 시기 한국불교가 나서서 위안부 피해 여성의 보금자리를 만든 공간인 만큼, 후대에 아픈 역사를 기억할 공간으로 남겨놓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단 하나밖에 없는 나눔의집 역사관을 활성화해 아픈 역사를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생활시설로 설립된 나눔의집은 이제 그 역할을 마무리하고 역사관으로의 전환을 준비할 때입니다. 

 

Q. 역사관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A. 나눔의집 역사관은 성노예를 주제로 한 세계 최초 역사관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나를 돌아보는 것이지요. 지금도 많은 국내외 관람객이 역사관을 찾으며 대한민국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역사관을 어떤 법적 지위로 운영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나눔의 집이 역사 기록과 추모, 교육사업을 하는 곳으로써 전환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의 고견을 듣고 있습니다. 

 

Q. 그럴려면 상당한 예산이 필요해 보입니다. 후원금 감소 등 운영상의 어려움도 뒤따를 것 같은데.

A. 최근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나눔의집 내년도 예산안과 지난해 역사관 관람 현황, 진행 중인 역사관 사업, 사업 완료 시기와 소요 비용 등 전반을 검토했습니다. 그간 논의돼 온 여러 안들을 비롯해 다시 한번 행정적 법적으로 전반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감소하고 있는 후원금 역시 고민의 일부분이고, 이 외에도 무거운 고민 많이 남았지만 앞으로 고생할 거라 마음먹었습니다. 격려도 질책도 모두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 설립 초심의 목표를 이어가겠습니다. 나눔의집의 제2도약기로 삼고 설립자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운영하고자 합니다.

 

Q. 경기도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십니까.

A. 나를 사랑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고 자신을 존중하는 자세가 우선 돼야 합니다. 타인의 우울하고 화난 감정을 지나치게 내 감정으로 끌어오면 자신을 갉아먹게 됩니다. 살아있는 존재 자체가 기적이지요. 우리는 하루하루 기적 같은 날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범사에 감사하고, 감사를 실천한다면 더 희망적이고 더 행복한 나날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은 이들이 감사하지 않으면 욕심이 자신을 망가뜨리지요.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다가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한다면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2025년에는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나라도 잘되고, 모두가 원하는 바가 이뤄지길, 평안해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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